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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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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고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사후 30여 년 만에 출간된 미발표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 Le premier homme>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 3년 뒤인 1960년, 카뮈는 자동차 사고로 마흔여섯에 급작스레 생을 마감합니다. 사고 당시 카뮈의 가방에서 발견된 육필 원고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최초의 인간>은 자크 코르므리라는 주인공의 유소년기에 집중한 성장소설로 '최초의 인간'에 대해 여러 해석이 가능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책은 1부 「아버지를 찾아서」, 2부 「아들 혹은 최초의 인간」으로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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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시기를 지나다 보면 부모에 대한 연민이 생겨나는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젊은 '그들'의 치열했던 지난 삶에 대한 연민, 정다움, 사랑이라는 감정입니다. <최초의 인간>의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는 젊은 나이에 몸속 포탄 한 조각만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묘지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1885-1914>라고 씌어 있는 생몰연대를 읽으면서 자동적으로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스물아홉 살. 그 자신은 마흔 살이었다. 저 묘석 아래 묻힌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지만 그 자신보다 더 젊었다. 그러자 그때 문득 굽이쳐 와서 그의 가슴속을 가득 채워 놓는 정다움과 연민의 물결은 억울하게 죽은 어린아이 앞에서 다 큰 어른이 느끼는 기막힌 연민의 감정이었다. _본문 가운데 

 

 

책이 어떤 방식으로 인쇄되어 있는지만 보아도 독자는 벌써 그 책에서 얻게 될 재미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있었다. 세련된 저자들과 독자들이 좋아하는 여백이 많고 널찍하게 조판된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촘촘하게 조판된 행을 따라 자잘한 활자들이 가득히 달리고 단어와 문자들이 빽빽이 들어찬 페이지들이 더 좋았다. 세련이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잘 쓴 책이건 험하게 쓴 글이건 상관하지 않았고 오직 글의 내용이 알기 쉽게 분명하게 씌어 있고 격렬한 삶으로 가득 차 있기만 하면 되었다. _본문 가운데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거의 모범답안에 가까운 문장입니다. 세련미보다는 내용의 충실함, 같은 책이라면 양장본 보다 문고판에 손이 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엄청난 식욕을 가진 사람들을 유일하게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저 엄청난 양의 어떤 시골 요리처럼..' 활자 중독 수준으로 책을 폭식하는 사람들에 관한 표현으로는 단연 최고의 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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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서는 저마다가 다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 땅에서는 그 역시 아버지 없이 혼자서 자랐을 뿐.. 모두 다 함께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눈뜨며 새로이 태어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_본문 가운데 

 

<최초의 인간>은 아버지를 모른 채 '주워 온 아이'처럼 스스로 인생길을 개척해야 했던 자크 코르므리이며, 젊은 나이에 죽은 그의 아버지이며,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 없는 모든 가난한 자들이기도 합니다. 자크 코르므리를 분신으로 삼은 알베르 카뮈 자신일 수도 있겠지요.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는 것은 오직 부자들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죽음이 지나간 길의 희미한 자취를 표시할 뿐이다. 잘 견디려면 너무 많이 기억을 하면 못 쓴다. 시간시간의 현재에 바싹 붙어서 지내야 했다. _본문 가운데

 

과거를 너무 많이 기억해서도,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서도 안 되는, 혼자 거친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최초의 인간>의 삶. 이 책에 일러스트를 그린 호세 무뇨스(José Muñoz, 1942년생)의 거칠고 과감한 그림체가 그런 '최초의 인간'의 삶과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2024.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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