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읽고
문학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으로 폴란드의 작가로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올가 토카르축(Olga Tokarczuk, 1962년생)을 꼽고 싶습니다.
생태주의, 채식주의, 동물권 수호와 같은 가치가 저자의 신념을 대변합니다. 2009년 발표한 범죄 추리소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이러한 작가의 가치관이 집결된 작품으로 2017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됩니다.
어느 겨울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왕발'이라 불리는 남자가 갑자기 시신으로 발견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웃에 사는 두셰이코와 '괴짜'로 불리는 남자는 자신의 집 바닥에 죽어있는 왕발 시신의 최초 목격자입니다. 둘은 왕발이 동물 뼈에 목이 막혀 질식사 한 것으로 추정했지만 이 일은 앞으로 마을에서 벌어질 연쇄살인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동물을 보면 그 나라가 어떤지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동물을 대하는 태도 말입니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잔인하게 군다면 민주주의나 그 어떤 시스템도 소용이 없습니다." _본문 가운데 두셰이코의 말
왕발은 두셰이코에게는 좋은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키우는 개를 학대하는 사람이었으며 야생동물을 잡아 자신의 배를 채우는, 눈빛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경찰서에서 두셰이코는 왕발 시신 최초 목격자로 몇 차례 보고를 하게 되지만 경찰은 그녀의 진술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한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중(喪中)이다. 이것이 나의 상태다. _본문 가운데
두셰이코의 마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물 학대 관련 뉴스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올라오는 요즘, 우리 역시 끊임없는 '상중(喪中)'의 상태라고 봐도 될 듯합니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호흡이 긴 장편 추리소설이지만 대단원에 가서야 비로소 사건이 해결되는 여타의 추리소설과 달리 범인과 그 범죄의 동기가 그리 오래지 않아 조금씩 윤곽을 드러냅니다.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 어떤 생물도 무용하지 않아요. 그것은 그저 사람들이 적용하는 어리석은 구별일 뿐입니다." _본문 가운데 두셰이코의 말
작가는 자신의 책을 결코 읽지 않을 사람을 향해 메시지를 남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참히 동물을 도륙하는 자들은 이 책의 존재 조차 모르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논리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린 무엇을 해야할까요.
2024.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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