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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모리스 블랑쇼의 「최후의 인간 Le Dernier homme」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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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블랑쇼의 「최후의 인간」을 읽고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의 1957년 소설 <최후의 인간 Le Dernier homme>입니다. 모리스 블랑쇼는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일생을 전적으로 학문, 특히 문학에 전념했습니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최후의 인간>은 블랑쇼가 소설형식으로 쓴 마지막 작품으로 이후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 책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최후의 인간>도 줄거리 파악이 수월한 작품은 아닙니다. 독자에게 어느 정도의 철학적 수준이나 사유의 깊이를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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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인간>의 배경은 어느 요양원입니다. 그곳에서 지내는 1인칭 화자 '나', 직원인 '그녀', 죽어가는 환자 '그'를 둘러싼 이야기ㅡ정확하게는 그에 관한 '나'의 사유ㅡ가 책의 주 내용입니다.

 

그를 방황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내 곁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그를 끌어당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나에게 무엇인가? 우리를 함께 묶어 주는 "우리", 그 공간은 우리로 하여금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공간이지 않는가? 너무도 거대한 행복인가? 욕망과 뒤섞인 호흡이 아니었을까? _본문 가운데 

 

 

그는 때때로 가깝지 않으면서도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장벽들은 무너졌다. 때로, 언제나처럼 가까이 있으나, 맺어진 관계 없이, 가로막던 벽들이 무너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롭게 벽을 세워서, 그에게는 약간의 무관심, 즉 각자의 삶이 균형을 이루는 바로 이 고요한 거리를 요구해야 한다. _본문 가운데 

 

블랑쇼는 <최후의 인간>에서 '나'의 사유와 난해한 독백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무한한 간극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우리'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적절한 거리를 인정하고 유지하는 건강한 관계성, 블랑쇼는 일생을 침묵과 은둔의 삶으로 이 관계성을 몸소 살아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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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해서 그의 경계로 존재하는 느낌을 지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매우 부분적인 경계, 어렴풋하게나마 모든 곳으로부터 그 공간을 경계 지을 최소한의 부분으로 말이다... 이 순간, 우리의 인접성, 우리 안에서의 생, 삶의 메마르지 않는 힘을 그가 느끼도록 하는 것이 불타오르는 의무처럼 여겨졌다. _본문 가운데  

 

<최후의 인간>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나', '그', '그녀' 세 인물이 만들어내는 서사, 2부는 관계에 대해 숙고하는 철학적 사유가 주를 이룹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는 게 익숙한 독자로서는 다소 어렵게 느껴집니다. 

 

"나는 그를 본다"라는 느낌은 오히려 "나는 그를 보았지만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와 같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관계에 증명될 수 없는 비탄의 회귀를 가져다준다. 그를 결코 혼자 두지 말 걸 그랬다. 나는 그의 고독함이 두려웠다. _본문 가운데 

 

'그녀'의 돌봄이 집중되는 '그'에 대해 미묘한 질투심과 역겨움을 느끼던 '나'가 그의 죽어감의 과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침묵과 고독 속에 머물던 '그'에게 블랑쇼 자신을 투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만한 세상이 죽어가는 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러나 결국 우리 모두는 같은 운명을 살게 되어 있음을, <최후의 인간>은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왜 '최후'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요. 철저한 고독 속에 죽어간 마지막 사람이길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최후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2024.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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