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 「소름 The Chill」을 읽고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물, 총 열여덟 편으로 이루어진 로스 맥도널드(Ross Macdonald, 1915-1983)의 '루 아처 시리즈' 중 하나인 <소름 The Chill>입니다. 1963년 발표작으로 로스 맥도널드 스스로도 지금까지 작품들 중 가장 '소름'끼치는 플롯의 작품으로 꼽습니다.
이미 읽고 있는 소설이 있어 번갈아가며 읽을 요량으로 부담 없이 책장을 넘겼는데 한순간에 절반 가까이 진도가 나가버립니다. 하드보일드(hard-boiled) 장르의 거장 다운 몰입력입니다. 탐정소설은 어쩜 이다지도 재미있을까요.
탐정소설을 읽을 땐 메모지가 필수입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메모하면서 범인을 같이 추적해 나가는 거죠. 거의 99% 틀리지만. <소름>에서 역시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책 중간중간 정교한 펜드로잉이 수록돼 있는데 이야기의 핵심 소재를 자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포드 선더버드(Ford Thunderbird)가 이렇게 생긴 차군요.
어느 날 사설탐정인 루 아처에게 신혼여행 중 아내가 실종되었다며 아내 찾는 걸 도와달라는 남자 앨릭스 킨케이드가 찾아옵니다. 어딘가 늘 불안정해 보이던 아내 돌리 맥기는 어디로, 그리고 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그녀를 찾아왔던 중년의 남자 척 베글리, 돌리의 지도교수인 헬렌, 그 대학 처장인 로이 브래드쇼, 10여 년 전 살해된 돌리의 어머니 콘스턴스, 이모 앨리스 젱크스 등 <소름> 속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 인생에는 끝없는 사다리를 오르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 있죠... " _본문 가운데 브래드쇼 부인의 말
"... 나는 아내를 사랑했어요. 코니를 사랑했습니다. 그건 내가 코니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_본문 가운데 척 베글리의 말
<소름>은 사실 안타까운 가정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심각한 외상사건을 겪은 아이의 심리, 그리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도 정상적인 일상을 이어 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섬세한 묘사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맥기는 오래된 분노에 불을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나도 많이 괴로워했고 너무나도 많이 생각했다. 그의 얼굴은 싸늘한 달처럼 침상 모서리에 걸려 있었다. _본문 가운데
개인적으로 <소름>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가슴 아픈 문장입니다.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 억울함을 품은 채 입을 다물고 살 수 있었을까.
<소름>은 로스 맥도날드가 스스로 평가하듯 플롯에 집중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와 정서 묘사가 탁월한 작품입니다.
2024.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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