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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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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읽고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루이스 호르헤 보르헤스(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 1899-1986)의  1935년 단편집 <불한당들의 세계사 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 입니다. 수록된 작품들은 「장밋빛 모퉁이의 남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존에 있는 책을 보르헤스가 재구성한 것으로 내용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세계 곳곳의 불한당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기는 쓰기 후에 일어나는 행위이다. 보다 체념적이고, 보다 문화적이고, 보다 지적인 행위. _서문 가운데 


보르헤스는 자신의 '다시쓰기' 방식에 대해 서문에서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보다 중요한 독자, 독자로서 다시쓴 이 책의 가치를 그는 이러한 논리로 미화합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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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수록 작품 가운데 「장밋빛 모퉁이의 남자」

 

수록된 아홉 편의 단편 중 최고는 단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창작물인 「장밋빛 모퉁이의 남자」입니다. 마치 서부의 총잡이 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이 작품에서 역시 불한당 무리가 등장합니다. 북쪽지역의 불한당 우두머리가 다른 동네에 와서 죽임을 당하는 내용인데 화자가 보르헤스에게 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고 프란시스꼬 레알ㅡ불한당 우두머리ㅡ은 마을 주점에서 작은 소동이 있은 후 밖으로 나가고 누군가로부터 칼에 찔린 후 다시 주점에 들어와 죽음을 맞이합니다. 

 

'내 얼굴을 가려주게' 더 이상 견디기 힘들게 되자 그가 느릿느릿 그렇게 말하더군요. 이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자존심뿐이었던 거죠... 그가 죽은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그에 대한 증오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지요. _본문 가운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그를 보내줍니다. 

 

선생ㅡ보르헤스를 일컬음, 아마 반짝 빛을 발하며 단도가 날아갔던 그 긴 창문을 기억할 겁니다. 잠시 후 그곳을 통해 우리는 죽은 자를 내보냈지요. _본문 가운데 

 

범인이 누구인지, 고 프란시스꼬 레알은 자신을 찌른 자의 얼굴을 과연 봤을지, 이런 사고 앞에 군중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을 생각하며 읽다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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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대담: 보르헤스가 보르헤스에 대해 말하다

 

책의 뒷부분에 69세의 보르헤스가 어느 잡지사 기자와 나눈 대담의 발췌본이 수록돼있습니다. 작품으로 작가를 만나다 보면 작가의 목소리가 궁금해지는데 이 인터뷰에서 보르헤스가 어떤 작가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주 약간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특히 보르헤스답습니다. 

 

보르헤스: 나는 전혀 여행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여행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은 기억을 통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물론 과거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당시로서의 현재가 있어야겠지요. 

 

기자가 새로운 세대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보르헤스: 저는 여타의 사람들에게 그 어떤 충고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나의 인생조차도 겨우 간신히 꾸려왔으니까요... 나는 약간 표류하며 나의 삶을 살았지요. 

 

 

영감을 받았던 작가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는 겸손을 가득 담은, 그리고 매우 철학적인 답변을 합니다. 

 

보르헤스: 내가 영감을 받았던 사람들은 내가 읽었던 책들과 그리고 또한 내가 읽지 않았던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보면 보르헤스는 지나칠만큼 겸손하고 사려깊은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은 편집자와 비평가로도 일했던 그가 언론이나 대중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2024.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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