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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마거릿 렌클의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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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렌클의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를 읽고


미국의 프리랜서 시인이자 수필가 마거릿 렌클(Margaret Renkl, 1961년생)의 2019년 데뷔작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Late Migrations>입니다. 책은 전체 열아홉 개의 자연 이야기ㅡ복숭아, 파랑새, 단풍나무, 일식 등ㅡ 속에 세세한 인생 이야기ㅡ고요하게, 향수병, 불면증, 작별 등ㅡ를 엮어 우리 인간의 삶 역시 자연세계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별다른 긴장이나 설렘 없이 편안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단아한 수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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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깊은 곳에서 안개는 어린 가지와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보석들을 하나하나 깔아 두면서 숨어 있던 거미줄을 꿈의 풍경 속으로 일깨운다. 안개는 우리가 아는 것을 감추고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우리 눈에 드러내느라 분주하다. _「드러내다」 가운데 

 

아침 이른시각이나 안개가 자욱한 날 숲 속을 걷다 보면 이슬이 맺힌 거미줄이 눈에 잘 띕니다. 화창한 날엔 거미줄이 눈에 보이지 않아 무심결에 지나가다 얼굴에  얽히기까지 하는데 말이죠. 안개 짙은 날을 떠올리면 흐리고 희미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마거릿 렌클은 그곳에서 '드러냄'을 찾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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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을 떠올릴 때 상황 그 자체보다 그 때 들리던 새소리, 풀 냄새, 눈앞을 스쳐 날아가던 새, 냉기나 열기 같은 게 더 강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걸 간혹 발견합니다.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에서 마거릿 렌클 역시 그런 기억을 꺼내놓고 있습니다. 저자의 은사께서 그녀에게 문예창작 석사 과정을 제안하던 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길 바로 건너편 들판에서 메뚜기가 윙윙거리고, 파랑새들이 메뚜기를 잡아채려고 울타리 말뚝을 위에서 덮치는 중이었다. 나는 여름 열기가 가득한 앨라배마의 그 현관 포치에 앉아, 선생님이 내 앞에 제시하는 또 다른 미래를 숙고했다. 시를 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붙들어 줄 생명줄이었다. _「향수병」 가운데

 

은사의 훌륭한 예지력을 따라 마거릿 렌클은 시인이 되었네요. 

 

 

너무 많은 움직임의 소용돌이 속에서, /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게 있기. / 조용히 하기. / 귀 기울이기. _「고요하게」 가운데

 

마거릿 렌클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가운데 한 가지로 '고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귀 기울이기. 이것은 꼭 한적한 자연을 찾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고요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 에어컨 바람소리와 창 밖에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리네요.  


2024.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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