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2023년 우리나라에 <맡겨진 소녀 Foster>로 처음 소개 된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 1968년생)의 대표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입니다. 아일랜드 현지에서는 2011년 발표된 소설로 클레어 키건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입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맡겨진 소녀>를 읽고 클레어 키건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드디어 재회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거대한 부패를 알게 된 한 남자가 그것을 모른척하지 않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남자가 겪는 도덕적 갈등,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안위라는 실존적 고민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_본문 가운데
주인공 펄롱은 대단한 소설적 장치를 입힌 인물이 아닌 전형적인 소시민입니다. 어려운 시기엔 더욱 몸을 낮추고 성가신 문제에 얽히고 싶지 않아 하는 평범한 사람, 한 여성의 남편이자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그저 딸들이 무사히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집안이 큰 불행에 휩싸이지 않는 것, 주인공 펄롱의 작은 바람입니다.
아내 역시 자기 가족의 일이 아닌 것, 그러니까 사소한 것들에는 최대한 관심을 끄고 살자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즉 보통의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죠.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_본문 가운데
그래서 때로는 용기있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리석다'라는 프레임을 씌워 우리의 비겁함을 덮어버립니다. 그러나 펄롱은 용기를 냈고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모든 감정을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결심을 밀고 나갑니다.
펄롱이 무시하지 않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달라지게 하고, 또 그 일이 세대를 지나며 더디지만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덧붙이는 말에 따르면 책의 등장인물과 세부내용은 모두 허구이지만 모티프가 된 20세기 초 아일랜드 모자 보호소 사건은 실제이며, 2013년 마침내 이 사건에 관한 아일랜드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이 2011년 발표됐으니 정부의 움직임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24.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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