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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렌세이 나미오카의 「큰 발 중국 아가씨」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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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세이 나미오카(Lensey Namioka)의 「큰 발 중국 아가씨」를 읽고


어릴 적 박물관에서 중국의 전족 문화를 알게 됐을 때 징그럽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전족에 사용된 꽃신과 함께 전족을 한 여성의 발 사진을 같이 본 것이 이유였을 겁니다. 발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뭉개지고 어그러진 기괴한 살덩어리, 충격이 컸었죠. 

 

중국계 미국인 작가 렌세이 나미오카(Lensey Namioka, 1929)의 <큰 발 중국 아가씨>에서는 약 1천 년을 이어 온 중국의 전족 문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1천 년이라니, 심지어 20세기 초까지 전족이 사용됐다는 게 믿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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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발 중국 아가씨>는 전족을 거부한 렌세이 나미오카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중국계 미국인 아이린으로 어느 식당에서 어린 시절 정혼자였던 한웨이와 마주칩니다. 정혼이 무산된 이유가 아이린에게 있고, 바로 그 사연이 <큰 발 중국 아가씨>의 주요 내용입니다. 

 

"왜 기다리지 않았소, 아이린? 뭣 때문에 미국 사람 집으로 도망쳐 버린 거요?" _본문 가운데, 한웨이의 말


중국의 부유한 명문가 셋째딸인 아이린은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랍니다. 당시 새로운 개혁사상에 눈뜬 아이린의 아버지가 조혼과 전족 풍습으로부터 딸들을 구하려고 하지만 집안에 아버지의 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 겨우 5살인 아이린에게도 이미 정혼자가 있고, 두 언니들 역시 전통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둘째 언니가 전족을 한 자신의 발을 아이린에게 보여주던 날, 그 처참함을 본 아이린은 결코 전족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자유로운 성정을 가진 막내가 자신과 같은 길을 가지 않길 바란 둘째 언니의 지혜였습니다. 그 일로 둘째 언니는 어머니로부터 심하게 혼이나고 여러 차례 뺨을 맞습니다. 

 

"아이린을 학교에 보내는 건 시집을 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여자가 전족을 안 한 것만으로도 크나큰 흠이거늘, 공부까지 한 여자라면 시집가기는 다 틀린 게야!" _본문 가운데, 할머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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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족이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급하게 뛰거나 걷지 않아도 되는 부유층 여성의 여유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유일한 자신의 편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고 아이린은 전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혼도 거부 당하고, 결국 집안의 골칫거리가 됩니다. 

 

10대 초반이던 아이린은 그렇게 미국인 선교사의 집에 보모로 들어가며 자신을 든든히 지켜줄 것만 같던 '명문가의 궁궐'을 나옵니다. 

 

어떤 식으로든 결국에는 집을 떠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는, 팽씨 가문의 첩이 되든지 비구니가 되든지, 아니면 진흙 벽으로 지은 초라한 농부의 집에서 사는 것뿐이었다. _본문 가운데 

 

다르게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아주 어린 나이에 이미 알아버린 아이린에게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훗날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요. 전족을 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화려한 옷을 입고 자수를 하며 하녀들의 시중을 받고 잘 먹고 잘 사는 삶, 그 삶을 택했다면 아이린에게 삶은 이미 5세에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20세기 초 전 세계 수많은 <큰 발 중국 아가씨>들 덕분에 지금의 여성 인권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2024.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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