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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의 「환희의 인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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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의 「환희의 인간」을 읽고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읽고 있으면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이완되는 느낌입니다. 괜찮다, 잘 될 것이다, 잘하고 있다, 이대로 모든 게 완벽하다, 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그런 표현을 전혀 쓰지 않는데도 말이죠. 

 

프랑스의 시인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 1951-2022)의 2012년 에세이집 <환희의 인간 L'Homme-Joie>입니다. 서문을 포함한 열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가지런히 배열된, 보뱅의 바람대로 '작고 단단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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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_「서문」 가운데

 

매거진 《프랑스 뮤튜엘》에서는 크리스티앙 보뱅에 대해 이렇게 평합니다. '일상을 시로 바꾸는 데 있어서 보뱅을 따라올 자는 없다'. 보뱅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말입니다. 그의 글은 다정하며 따뜻한 데다 쉽고 편안합니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배열하고, 단락을 배치하는 섬세한 보뱅의 손길이ㅡ우리로서는 번역자의 손길도ㅡ 건성건성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합니다. 

 

 

알츠하이머로 일 년간 요양원에 머물렀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쓴 글 「살아있는 보물」에서 보뱅은 요양원에 대해 '몰인정의 유산으로 등록될만한..'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모시긴하지만 말이죠.

 

황폐할수록 더욱 아름답다. 나는 비천한 이들에게서 금을, 진창에 던져진 얼굴에서 보석을 보았다. 우리는 모두 한 줌 부스러기로 끝난다. 때가 되면 천사가 그것으로부터 다시 온전한 빵을 만들 것이다. _「살아있는 보물」 가운데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순수한 삶,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이라는 작품 전체에 걸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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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 천사가 보내준 이 선물을 사람들은 더는 원하지도, 열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_Christian Bobin

 

에세이들 사이사이에 낀 여러장의 간지가 쉬어갈 틈을 줍니다. 간지들 사이에는 보뱅이 친필로 쓴 짧은 단락들도 수록돼 있는데 고요함을 누릴 여유가 없는 우리들을 위한 배려인 듯합니다.  

 

 

책과 멀어진 삶이란 단 하루도 생각할 수가 없다. 책이 가진 느림에는 병을 고치는 사람의 방식이 녹아있다. 나는 눈부신 고요함이 있는 하얀 백악질의 절벽에 조각된, 책이라는 시원한 예배당에서 수많은 여름을 보냈다. _「새로운 삶」 가운데 

 

책이라는 시원한 예배당,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표현이라니! 고요함이 천사가 보내준 선물이라면 그것을 통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역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책이라는. 시원한. 예배당. 


2024.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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