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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의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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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의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읽고 


<작은 파티 드레스>라는 산문으로 처음 알게 되어 단번에 그의 글에 반했습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수필가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 1951-2022)입니다. 정갈하고 품위 있는 글, 근원적인 외로움과 슬픔이 단단히 버텨주고 있는 글이 보뱅의 매력입니다.

 

이 책 <그리움의 정원에서 La plus que vive>는 1996년 발표한 에세이로 크리스티앙 보뱅이 1979년 처음 만나 줄곧 사랑한 여인, 그러나 1995년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슬렌을 향한 헌사입니다. 

 

서문에서부터 아름다운 문장과 단어들이 페이지를 채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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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은 다음 날, 이제 더는 글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죽음은 종종 우리를 패배자로 만들고 과오를 저지르게 한다. 침울함 속에는 미숙한 무언가가 있다. _본문 가운데 

 

소중한 누군가가 떠나면 자연스럽게 상대를 향한 죄책감과 신을 향한 원망이 슬픔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은 더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투정과도 같은 토라진 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놓지 않습니다. 그가 말한 '미숙한 무언가'를 이겨냅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이런 사랑 고백을 한다면, 이 세상에 온 이유가 그것으로 충족될 것만 같습니다.

 

1951년 봄, 나는 세상에 왔고, 잠자기 시작한다. 1979년 가을, 나는 너를 만나고 깨어난다. 1995년 여름, 나는 일을 잃고, 뼛속까지 사무치는 한기에 떨고 있다. 온종일 내가 하던 진짜 일은 너를 바라보고 너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16년 동안, 그늘에 앉아 길에서 춤추는 너를 바라보았고, 그 일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남자였다. _본문 가운데

 

이 부분을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제게도 잠자던 시기, 그리고 저를 깨어나게 한 누군가가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삶은 이런 작은 것들에 잔잔한 행복을 느끼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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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였습니다. 정갈한 삶을 추구했으며 그를 닮은 정갈한 글을 종종 내놓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사랑하는 지슬렌을 상실한 경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었겠지요. 

 

인생이 쉬운 사람은 없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뜨거운 숨결에 영혼이 첫 화상을 입은 순간부터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리고 관계들은 곧바로 뒤얽히고 복잡해지며 극심한 고통을 준다. _본문 가운데

 

인생의 어느 지점을 지나다 보면 보뱅의 이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 때가 있습니다. 철 모르던 어린 시절, 혹은 어른이 되었지만 철 모르던 시절을 제외하고 말이죠. 관계를 맺는 한 고통을 피할 수 없고, 관계를 맺지 않으면 외로움과 허무를 피할 수 없는, 그래서 아플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나 봅니다. 

 

<그리움의 정원에서>에 내내 사용되는 '너'라는 대명사는 결국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와 관계맺고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2024.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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