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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부처스 크로싱」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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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부처스 크로싱 Butcher's Crossing」을 읽고


미국 작가 존 에드워드 윌리엄스(John Edward Williams, 1922-1994)의 소설 <부처스 크로싱 Butcher's Crossing>입니다. 국내에는 <스토너 Stoner(1960)>와 <아우구스투스 Augustus(1972)>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처스 크로싱>은 1960년 발표한 존 윌리엄스의 두 번째 소설로 1870년대 미 서부 캔자스 개척자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19세기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젊은 자연주의자들이 서부로 몰려듭니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도시에서 '말썽'을 일으켜 도피해 오거나 '한몫'을 챙기려는 목적으로 서부로 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부처스 크로싱>의 주인공 윌 앤드루스는 목사의 아들로 대서부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하버드대 3학년을 중퇴하고 캔자스 부처스 크로싱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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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을 일으켰나? 고향에서 무슨 문제에 말려들었나?" "젊은 사람들은 자주 그러지. 그래서 이리로 오는거야. 목사 아들이라도." (...) "젊은 사람들은 찾아낼 무언가가 있다고 늘 생각하지. 글쎄, 그런 건 없어. 자네는 거짓 속에서 태어나고, 보살펴지고, 젖을 떼지. 학교에서는 더 멋진 거짓을 배우고, 인생 전부를 거짓 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쯤이면 깨닫지...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어. 이미 너무 늙었거든." _본문 가운데 

 

보스턴에서 서부 캔자스로 온 앤드루스를 맞이하는 사람은 목사 부친의 지인 맥도널드입니다. 그는 초면이지만 아들뻘인 앤드루스에게 직설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 이미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앤드루스는 그런 게 아니라고 재빨리 말을 가로막아봅니다.

 

거짓과 허상으로 가득 찬 삶, 뭔가 다른 게 있을 것 같아 이리저리 떠도는 인생, <부처스 크로싱>은 그런 인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모르게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자신을 이끌어 온 것 같았다. 이쪽에는 도시가, 저쪽에는 자연이 있지. 도시로 돌아가야만 하더라도, 다시 점점 더 멀리 떠나기 위해 돌아갈 뿐이야. _본문 가운데

 

그에겐 꿈과도 같았던 <부처스 크로싱>을 눈앞에 두고 앤드루스는 운명과도 같은 이끌림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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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스는 캔자스 <부처스 크로싱>에서 버팔로 사냥꾼 밀러를 만나 동행합니다. 들소 떼로 한몫 잡겠다는 의도입니다. 

 

앤드루스는 밀러에게서 특히 이 내면으로의 물러남을 감지했다. 거의 음울할 정도로 무심하고 무기력하게 모닥불을 응시했다. 사냥하거나 가죽 벗기는 일을 도와줄 때만 초롱초롱했다. 앤드루스가 보기에는 그 초롱초롱함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강했다. _본문 가운데

 

끝없이 베풀고 늘 풍요로운 자연과 탐욕으로 잔혹한 살육을 일삼는 인간, 들소 사냥에 빠져들면서 앤드루스와 밀러는 어떠한 감각을 잃어버린 듯 점차 다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시간의 흐름은 그와 동행하는 세 사람의 얼굴에서, 그리고 스스로 의식하는 자기 내부의 변화에서 드러났다. 가끔 자신이 새로운 몸, 또는 비현실적인 부드러움과 창백함과 매끄러움의 층 아래 숨어 있었던 진정한 몸 안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_본문 가운데

 

아메리칸 원주민의 삶과도 같은 버팔로를 대량 학살하는 장면에서는 또 다른 주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연주의에 빠져 동부에서 서부로 왔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자본을 탐하는 인간, 그리고 그 탐욕의 결말에서 심판의 메시지도 보입니다. 

 

<부처스 크로싱>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젊은 사람이라는 단어, 그리고 거짓 속에 살아가는 삶, 죽을 때쯤이면 깨닫게 되는 진리, 그러나 그땐 '너무 늦고, 너무 늙어'버리는 우리 인간의 비참하고 어리석은 삶. 풍요롭고 너그러운 대자연의 인내가 끝이 나는 때는 언제쯤일까요. 


2024.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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