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포터(Andrew Porter)의 「사라진 것들 The Disappeared」을 읽고
2008년에 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문단의 관심을 집중시킨 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Andrew Porter, 1972-)가 15년 만에 내놓은 단편집 <사라진 것들 The Disappeared>입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는 20대 여성의 시선이 강조되었다면 <사라진 것들>에서는 40대 중년 남성의 시선이 주가 됩니다. 다음번 작품집은 노년의 시선이 담기게 될까요.
이 소설집에는 전체 열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고작 두 페이지로 끝나는 작품도 있고, 소설 속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전부를 설명하지도 않으며, 열린 결말로 끝나는 작품이 대부분인 앤드루 포터의 소설은 그래서 심심하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스토리텔링보다 감정선에 집중하게 합니다. 앤드루 포터의 매력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_「라인벡」 가운데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잃어버립니다. 표제처럼 사라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시간, 젊음, 친구, 눈길, 의지, 열정. 그것들은 순식간에, 너무나 갑자기 사라집니다. 삶에 주어진 시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라인벡」에서 앤드루 포터는 이 상황을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의 꿈ㅡ주체가 누구인지도 정확하지 않은ㅡ과도 같은 인생입니다.
대니얼을 떠올리며 그 친구가 벌써 얼마나 그리운지, 그의 얼굴을 얼마나 보고 싶은지, 소중한 나의 친구. 인생의 다른 수많은 일에서는 그토록 운이 좋았으나 한 번의 지독한 일격을 당한, 소중하고 또 소중한 나의 친구. _「사라진 것들」 가운데
실종된 친구 대니얼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말에서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사라진 친구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사라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보입니다. 여러번 반복되는 '소중하다'라는 표현에서 청년기를 갓 지나온 중년이 가지게 되는 주요 정서를 어렴풋이 엿볼 수 있습니다.
2024.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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