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론 베이커스(Jaron Beekes)의 그래픽평전 「스피노자」를 읽고
스피노자의 전기를 그래픽 평전으로 엮은 책, 야론 베이커스(Jaron Beekes, 1982)의 <스피노자>입니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철학 사상에 대한 것보다는 한 인간의 삶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신권과 왕권이 주류인 17세기 유럽사회에서 그와 정반대 되는 행보를 한 스피노자의 용기 있는 삶은 적잖은 영감을 줍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필리프 블롬(Philipp Blom)은 책의 서문에서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더 깊고 풍부한 삶을 살길 바란다며 스피노자의 명언을 첨언합니다. "무지에는 용서가 없다(Ignorantia non est argumentum)."
유대인 출신으로 네덜란드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란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5)는 유대교 교리에 반하는 사상으로 24세에 이단으로 낙인찍혀 제명당합니다. 스피노자의 모든 저작은 금서 목록에 올랐으며 이후 렌즈세공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철학사상을 연구하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이제 한 가지는 확실해졌네요. 제 과거를 확실히 끊어 버려야 한다는 거요." _Spinoza
20대 초반 스피노자는 유대인 공동체, 유대교, 필요하다면 친구와 가족까지 끊어내고 자신의 사상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은 용기있는 선택으로 드러납니다.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을 강조합니다. 감정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신앙은 지성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시 스피노자의 철학 사상을 책으로 발표하라는 추종자들의 권유에 대해서는 자신의 모토를 꺼내보입니다.
"신중하라!(Caute)" _Spinoza
덕분에 그는 1675년경, 대작 <에티카 Ethica: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를 온전히 집필할 수 있었으며 박해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 1부에서 스피노자는 '신에 대하여'라는 소제목 하에 그 유명한, '신은 곧 자연'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을 평생 추구합니다.
"사람이 그 마음속에 지식을 많이 품을수록, 신에 대한 사랑은 커져만 가지. 그렇게 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져 간다네." _Spinoza
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자와 철학사상이지만 그래픽평전 형식은 역시 도전해 볼 만합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네. 물방울이 바다에 떨어지기를 두려워하던가?" _Spinoza
진정한 자유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내가 물방울임을 자각하는 것도 아직 못했는데, 세상의 전모가 드러나는 통찰의 순간이 올까요.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서강대 철학과 서동욱 교수의 서문에 담긴 말입니다.
'당신이 당신 내면에서 스스로를 죽이는 깊은 병의 원인과 결과를 찬찬히 관찰하고 치유하려고 할 때 이미 당신은 스피노자주의자이다. "눈물 흘리지 마라, 화내지 마라, 이해하라." _서동욱 교수 서문 가운데
저는 스피노자주의자였네요. 그렇다면 이제 스피노자를 제대로 읽어봐야겠습니다.
2024.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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