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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수전 캠벨 바톨레티의 「검은 감자: 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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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캠벨 바톨레티의 「검은 감자: 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를 읽고


미국의 작가 수전 캠벨 바톨레티(Susan Campbell Bartoletti, 1958)의 역사서 <검은 감자: 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19세기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리는, 1845년부터 1852년까지 이어진 아일랜드 대기근을 주제로 한 논픽션입니다. 당시 전체 인구가 800만 명이던 아일랜드는 주식인 감자 역병으로 100만 명 이상이 아사하거나 질병으로 죽고 200만 명 이상이 미국, 캐나다, 영국 등지로 강제이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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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토리얼 타임스_1846.2.7.

 

<검은 감자>는 당시 상황을 스케치한 펜화가 함께 수록돼있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건조하게 읽히는 여느 역사책과는 다른 생생한 그림동화 같기도 합니다. 19세기 아일랜드의 영세 소작농이 사는 오두막집입니다. 직접 지은 오두막에 주식인 감자가 한가득 쌓여있고 가축들도 집 안에서 같이 살아갑니다.  

 

1845년 까닭모를 전염병으로 밭에 있는 감자, 창고에 보관 중인 감자, 모두 검게 썩어갑니다. 이후 5년간 감자 역병이 연거푸 발생했고 당시 굶주림과 질병으로 수많은 아일랜드인이 목숨을 잃습니다. 

 

 

미국, 캐나다, 영국으로 이주하던 아일랜드인들 역시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동 중인 배 안에서 60%가 역병으로 사망하고 무사히 이주한 사람들에게도 차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의 대기근에 동정심을 보이던 미국인들은 그들이 자국에 들어오자 태도를 바꿔 이주민을 밀어냅니다. 'NINA(No Irish Need Apply: 아일랜드인 사절)'라는 글귀를 곳곳에 붙이고 그들의 고용을 거부하기까지 했습니다. 

 

19세기에도 21세기에도 이주민, 난민들의 상황은 열악하고 처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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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봉기는 놀라웠다. 하찮은 농기구로 무장하고 들고일어난 농민은 경찰이 점거한 집을 빼앗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담무쌍하게 경찰과 맞서 그 집을 빼앗으려고 시도했다. 아일랜드 백성은 겁쟁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스스로도 잘 안다." _본문 가운데, <런던 위클리> 기자 

 

영국의 식민지배와 영국인 지주들의 횡포에 시달리던 아일랜드인들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수차례 봉기를 일으키고 저항합니다. 이 사건은 이후 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데도 영향을 줍니다. 

 

아일랜드인 수천 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마당에 아일랜드를 방문하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불꽃을 터뜨리고 조명등을 밝히는 데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갑니다. 800년간 아일랜드를 식민통치 한 영국은 당시 아일랜드의 도움 요청도 묵살했습니다. 

 

"여윳돈이 있으면 조명등이 아니라, 굶주림에 시달리는 여왕 폐하의 백성을 위해 쓸 일이다." _본문 가운데 

 

당시 아일랜드를 도와준 것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인 촉토족이었습니다. 촉토족은 조상 대대로 살던 미시시피 땅에서 쫓겨나며 부족민 절반이 사망한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일랜드인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고 구호 기금으로 110달러를 기부합니다. 

 

 

아일랜드인은 배타적이고 거칠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너그럽고 인정이 많았다. 아무리 가난에 쪼들려도 여행자든 거지든 손님을 문전박대하는 법이 없었다. _본문 가운데

 

몇년 전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동안 만난 한 아일랜드인이 한국인과 아일랜드인의 정서가 비슷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양국모두 식민지배 역사가 있으며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지만 밑바탕에 깔린 적대감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아일랜드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심지어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문화도 닮았습니다.

 

<검은 감자>에서 중요하게 제기하는 문제는 아일랜드 대기근이 '감자 역병'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800년간 이어진 영국의 식민통치로 전국토가 황폐화하고 국민들은 정치, 경제, 민족, 종교, 사회적인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이 그 실질적인 배경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아일랜드 대기근이 200년이 다 되어가는 역사 속 사건이지만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지금도 굶주림, 질병, 죽음, 혼돈, 봉기라는 사건은 전세계 곳곳에서 현재형으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2024.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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