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쯤 출간된 책입니다. 당시 20대의 저에게도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묵직하지만 진실한 주제였습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나.." 를 깊게 묵상하다 보면 결국 죽음에 닿습니다. 죽음은 모든 생명에게 참이며 실제입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나는 무엇을 후회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이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지금도 이 책을 골랐겠지요.
책은 일본인 호스피스 전문의인 오츠 슈이치가 썼습니다. 그가 호스피스 전문의 생활을 하며 만난 천여명의 환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스피스 전문의 답게 그는 이전에도 <죽음학>, <남은 시간은 6개월>, <빈사의 의료> 같은 류의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의 표지 뒷면에 애플 CEO 스티브잡스가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했던 말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언가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죽음은 삶을 변화시킨다. 여러분의 삶에도 죽음이 찾아온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잘 살고자 애를쓰면 쓸수록 죽음은 어느새 옆자리에 와있습니다. 제게 죽음은 두렵거나 무서운 대상은 아닙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다소 독특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주위에 죽음을 놓고 편하게 대화할 사람은 없지만 대화라는 것이 꼭 '살아있는 누군가'를 상대로 해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책의 저자들과, 저 자신과, 제 반려묘와, 제가 믿는 신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책의 제목만 봐도 내용이 연상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도 그러한 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읽어봐도 새삼 특별할 것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다시 읽어봅니다. 늘 작게나마 죽음이 저를 바른 길로 인도했으니 이번에도 그럴것으로 생각합니다.
에필로그의 글입니다. 삶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이 땅에 태어난 우리들에게 인생이 주는 마지막 과제, 죽음을 '다음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과제인만큼 엄청난 마음의 고통을 주는 죽음. 누군가의 죽음을 수천번 바라봤던 호스피스 전문의인 작가가 남긴 마지막 문장이 아프도록 따뜻합니다.
"마지막 숙제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
자신을 속이면서 참고 또 참는 성실하고 사람 좋은 이들에게 잔잔한 '경고'를 날립니다. 과연 참고 또 참는, 성실한 모습이 자신이 선택하긴 했으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인지 직시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대로, 자신의 마음을 따라, 진실하게 살 것을 제안합니다. 작가의 나라인 일본과 우리나라는 비슷한 문화가 있습니다.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는 삶,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삶, 예의바른 행동을 요구받으며 '타인', 혹은 '집단' 중심의 교육을 받아온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는 늘 '타인'이 기준이 되는 바람에 착하고 성실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진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삶이란 고통일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저는 삶은 고통이라고 단정짓는 한 철학자를 알고있습니다. 강신주 박사입니다. 고통이 우선이고 행복(기쁨 혹은 평안)은 다음이라는 것입니다. 삶에 상존하는 고통이 조금씩 완화되며 평안(행복)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불행하지 않는 것이 행복(평안)이라고 말하는 철학자도 있습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큰 숙제를 가득 안고 세상에 왔다는 것이 될 수 있을까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고통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이지요.
유산과 유언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호스피스 전문의 답게 무척 현실적인 유산 분배를 말합니다. 병간호를 하고, 병원비를 부담하는 가족구성원(자녀 혹은 부모, 형제)에게 더 많은 유산을 남겨줘야한다는 것입니다. 유산에 대한 권한이 있는 모든 가족이 모여서 대화를 통해 정리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환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만 남은 가족들 사이에 분란이 생길 소지는 없애는 것이 환자 본인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저는 얼마전 외과수술을 받기 위해 며칠간 입원했었습니다. 입원한 환자인 저는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잠시 병실을 벗어날 때에도 의료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식사도 병원에서 주는 것을 그 시각에 먹어야 하고, 먹고 자는 동안에도 불시에 방문하는 의료인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물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일이 많다고 투덜대던 회사에서의 일상마저 그리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주체성을 잃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페이지는 제게 조금은 다른 울림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스물다섯번째 후회로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을 이야기 합니다. 특정 종교를 말하지 않습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으로서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겸손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의 존재와 신의 가르침을 통해 삶과 죽음, 기쁨과 분노, 슬픔과 고통 같은 세속적인 눈으로는 좋고/나쁜 그 모든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죽음의 순간도 감사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작가는 이 챕터의 마지막 줄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아무쪼록 잊지 않길 바란다."
2021.11.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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