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때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왜 저 사람이지, 만약 내가 저 사람이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디로 가는 것이며, 지금 이 상황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이며, 왜 그런 행동을 하는걸까. 저 사람의 눈에 이 세상은 친절할까 그렇지 못할까... 저 사람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이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현실적인 사고보다는 직감적이고 이상적인, 한편으론 공상에 가까운 생각을 즐겨했습니다.
삶과 죽음도 어찌보면 나와 그 사람의 관계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팔을 다쳐 아프고 불편할때,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하루를 살아가지 않을까? 반대로 '그 사람'이 팔을 다쳐 아프고 불편해할 때,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살아가겠지요. 다쳤다는 것이 있기에 다치치 않은 것이 있으며, 다치치 않은 상태가 있기에 다쳤다는 상태가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한발 물러서서 나와 그 사람을 바라본다면 그저 상태일 뿐입니다. 옳고 그름, 행복 불행 이것은 한쪽 편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발생하는 것들이지요. 삶과 죽음 역시 죽음이 있기에 삶이라는 상태가 있는 것이고, 죽음은 삶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장자(莊子)를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자기를 상대방이 바라보면 '저것'이 되고, 자기인 '이것'도 '저것' 때문에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것'과 '저것'이 서로를 생겨나게 한다는 '방생(方生)'이라고 말합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옳음이 있어 그름이 있고, 됨이 있기에 안 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 성인(聖人)은 한쪽의 입장에서가 아닌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하늘의 빛에 비추어 봐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함(인시: 因是)'이라고 합니다.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서 나오는 일방적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사물이나 사람을 한쪽에서만 바라보는 편견을 버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동일한 사물 또는 사람이 '이것'도 되고 동시에 '저것'도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상태는 삶이라는 상태가 없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이라는 말은 반드시 '저것'이라는 말을 전데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없다면 삶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가지 더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없으면 부모가 있을 수 없으므로 자식도 부모를 낳는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뜻보면 대립하고 모순하는 듯한 개념들, 삶과 죽음, 밤과 낮, 됨과 안 됨, 옳음과 그름, 선악, 미추, 고저, 장단 같은 것들이 결국 독립한 절대 개념이 아니라 빙글빙글 돌며 어울려 서로 의존하는 상관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사물의 한 면만을 보고 다툼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통째로 본다면 실재는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그런 것일 뿐입니다. 사물의 전모를 꿰뚫어 보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다보면 또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가진 사람, 시어머니와 갈등하는 며느리, 자식의 일로 고민하는 부모, 가족의 죽음으로 힘들어 하는 남은 가족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든 사물과 상태는 그저 그것일 뿐이라는 것이지 좋고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고통과 즐거움을 생각해봅니다. 보름 전에 수술을 하고 당일에는 무척 통증이 심했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통증은 줄어들고 평안해집니다. 어제를 기준으로 하면 오늘은 즐거움이며, 내일을 기준으로 하면 오늘은 고통입니다. 결국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서 왔다갓다 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의미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지요. 질병을 나눌때도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을 많이 씁니다. 질병을 진단하는 절대적인 상태가 있는 것이 아닌 스펙스럼 안에서 증상의 심하고 덜한 것이 나뉘어진다는 것입니다.
공상을 즐기는 저는 철학이나 종교에 흥미가 있습니다. 철학이나 종교를 공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역시 공상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궤변인가요. 궤변이라고 말한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궤변을 규정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나', 자신의 기준에서 '너'를 바라볼 뿐입니다. 자유를 얻는 방법은 무척 단순합니다.
2021.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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