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오노(Jean Giono)의 「폴란드의 풍차」를 읽고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Jean Giono, 1895-1970)의 소설, 1953년에 출간된 <폴란드의 풍차 Le Moulin de Pologne>입니다. 서정적이고 따뜻한 동화 <나무를 심은 사람>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인데 장 지오노의 작품은 대체로 자연과의 조화, 전쟁 반대와 평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 두 차례의 전쟁 반대 시위로 투옥된 이력이 있을 만큼 삶과 작품을 통해 평화를 줄기차게 외쳐온 작가입니다.
<폴란드의 풍차>는 5대에 걸친 코스트 일가의 불운을 다룬 소설입니다. 부엔디아 가문의 대를 이은 불행을 다룬 소설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1967)>을 연상하게 하네요.
<폴란드의 풍차> 도입부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조제프 씨는 코스트 가문의 사위입니다. 그에 관한 묘사가 정적이면서 동적인데 조제프 씨를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을 만큼 자세합니다.
이리저리 태평스럽게 걷거나 아니면 의자에 앉아 제목을 알 수 없는 문제의 그 책을 오후 내내 읽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알 수 없는 일들에도 불구하고 조제프 씨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정말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그는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지는 않았다. _본문 가운데
조제프 씨는 말하자면 어딘가 '깨달은 자의 아우라'를 풍기는 인물입니다. 결코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닙니다.
가문에 계속된 죽음과 질병이라는 불운을 '평범한 운명'의 사위들을 통해 누그러뜨리고자 코스트는 두 딸을 지극히 무난한 남자들에게 시집보냅니다.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 사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는 제 딸들이 그저 단순히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살았으면 했다. _본문 가운데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한 평범한 삶이 코스트 가문에는 기도제목이 될만큼 간절합니다.
4대째 이어지던 끊임없는 불행은 코스트 가문에 조제프가 사위로 들어오면서 제동이 걸립니다. 그 아우라 넘치는 인물말이죠. 가문에 대를 이어 내려오는 불운 덕분에 코스트 일가 사람들은 모두 '불안'을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그러나 조제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편안하면 이내 그것을 깨닫는다. 자기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불안감이 누군가가 편안히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_본문 가운데
코스트가를 휩싸는 불행한 운명은 사실 한번의 우연이 만들어낸 두려움일지도 모릅니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서 불운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하게 된 것이죠. 평안을 누릴 줄 알았던 조제프가 있는 동안은 불운이 멈춘 듯했다가 그가 죽은 후 다시 코스트 일가에 불운이 이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칼이나 맹금보다도 우리가 삶에 대해서 품고 있는 관념과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것은 판초 빌라의 혁명보다 더 확실하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파괴시킨다. _본문 가운데
장 지오노는 이러한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와 불운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우리의 관념이 불러들이는 불행이라고 말이죠.
2024.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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