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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김한민 작가의 그래픽노블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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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작가의 그래픽노블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읽고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의 글을 옮기는 번역가로 처음 알게 된 김한민 작가의 그래픽노블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전문 번역가로만 여겼는데 책을 여러 권ㅡ그것도 여러 장르에서ㅡ 출간한 작가입니다.

 

이 그래픽노블의 제목은 <비수기의 전문가들 Experts of the Low Season>. 구성도 독특하고 그림체가 특히 매력적입니다. 시구처럼 끊어지는 단문을 쓰고 있어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글에서 어딘가 한병철 철학자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제가 오래 품어온 화두를 다룬 토막글도 곳곳에 보여 지금 제게 꼭 맞게 찾아온 책이라는 반가움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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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느 날 자유란 게 뭔지 알아버렸고 / 그날로 갇힌 신세가 돼버렸다... 여긴 어디지? / 동굴인가? / 더 이상 아니다. / 동굴 밖인가? / 아직은 아니다. _본문 가운데

 

후드티에 가방과 휴대폰을 꼭 쥐고 밤 버스를 타고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않은 전형적인 '국제 이방인'입니다. 지난 어느 시기의 제 모습이네요. 

 

 

돈이 없으면 증오는 물론 / 예민할 권리도 없다 / 버는 만큼만 예민해질 수 있다. // 이 원칙을 깨고 싶다. / 없이 살면서도 / 모를 다듬지 않고 / 모난 대로 세상에 찍히고 / 모난 데로 세상을 찍고 싶다 / 찍어버리고 싶다! // 잘도 찍는구나. _본문 가운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은 돈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권력(돈)을 많이 가질수록 사무실에서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비행기 좌석도 마찬가지죠. 권력(돈)이 없는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불편을 감수하고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미국 작가 루시아 벌린은 <청소부 매뉴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많이 기다린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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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은 소위 전문가의 비수기에 해외 이주를 감행합니다. 목적지는 포르투갈. 관광객이 아닌 이상 외국인은 해외에서 그리 환영받는 존재는 아닙니다. 매 순간이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특히 이민국에서는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불친절을 넘은 무례함을 견뎌야 하죠. 저 그림 한 장에 너무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어 다소 부적절한 감정이지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 꺾어진 발목 하며.(ㅋㅋ) 

 

 

 

요즘 제 화두입니다. 쓰레기.

 

항상 죄의식으로 가득했다. / 자연에게 미안했다 /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배출하는 / 무시무시한 양의 / 추와 쓰레기 // 인간은 쓰레기 양산에 일가견이 있다. // 목표는 하나: 쓰레기가 되지 말자. / 적어도 덜 쓰레기가 되자 _본문 가운데

 

김한민 작가가 번역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에 반했는데 역시 번역가 자신이 먼저 시인이었습니다. <비수기의 전문가들>,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2024.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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