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의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Poemas Escolhidos」을 읽고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와 그의 '이명'들의 시선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Poemas Escolhidos>입니다. 시집에 함께 수록된 이명 시인은 알베르투 카에이루(Alberto Caeiro)와 리카르두 레이스(Ricardo Reis)로 페소아의 시 보다 더 많은 작품이 수록돼 있습니다.
화가, 시인, 소설가, 극작가 같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업 자체로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합니다.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흥미로운 작가의 작품을 보면 그래서 천재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페소아의 '이명' 작가들은 모두 각자의 자서전적 일대기를 갖고 있어 단순한 '필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게 놀랍습니다.
"우리 모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우리 자신이 되었다." _Fernando Pessoa
시집의 뒷 표지에 적힌 페소아의 말이 철학적이면서 예술적으로 다가옵니다.
위대해지려면, 전부가 되어라, 너의 어떤 것도 / 과장하거나 제외하지 말고, / 매사에 모든 것이 되어라. 네 최소한의 / 행동에도 네 전부를 담아라. _리카르두 레이스(Ricardo Reis)의 송시들(Outras Odes) 가운데
위대한 인물이 극히 드문 이유를 이 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살고 있는데.. 내 전부가 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입니다. 하.
생각한다는 건 /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을 때 /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 //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_알베르투 카이에루(Alberto Caeiro)의 '양 떼를 지키는 사람(O Guardador de Rebanhos)' 가운데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시집의 표제가 실린 작품입니다.
집에 사는 자가 안쓰럽구나, / 자기가 가진 난로에 만족해서, // 행복해하는 자가 안타깝구나! / 그저 생이 지속되기에 살아가는. // 불만스럽다는 건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 / 영혼이 가진 시각이 / 눈먼 힘들을 다스리기를! _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의 메시지(Mensagem) 가운데
집에 사는 자. 행복해하는 자. 불만스럽다는 것. 시인은 역시 철학자입니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평생 다량의 산문과 시를 발표했으나 생전에 출간한 포르투갈어 저서로는 1934년 시집 <메시지 Mensagem>가 유일합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불안의 서> 역시 사후에 출간됐으니 페소아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2024.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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