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셀라 포스토리노(Rosella Postorino)의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을 읽고
서가를 훑어보던 중 시선을 잡아채는 표제의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이탈리아 작가 로셀라 포스토리노(Rosella Postorino, 1978-)의 2018년 작품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입니다. 영어 번역본의 제목은 <At the Wolf's Table>, 이탈리아어 원서 제목은 <Le assaggiatrici, 시식가>인데, 원서 제목이 가장 직관적이네요.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이 소설은 나치 독일 시대에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ㅡ독극물 감별ㅡ하는 일을 한 이들의 증언과 고증을 토대로 한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얼마 전부터 자꾸만 원치 않는 곳에 오게 되는 걸까? 왜 나는 이런 상황에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걸까? 적응력은 인간 최고의 능력이라지만 적응을 하면 할수록 내 인간적인 면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_본문 가운데
히틀러가 먹을 음식을 준비할 땐 통상 200인분의 음식을 만들어 시식을 충분히 시켰다고 합니다. 인간으로서 해선 안될 짓을 많이 했으니 불안 수준도 그에 비례해 높았겠지요. 시식 일을 하는 여성들에 대한 대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평소 거의 굶다시피 하다가 가끔 '일'을 할 때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니 탈이 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독재에 순응하는가?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 우리의 변명이다. 나는 고작해야 내가 씹어 삼키는 음식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높은 급여를 받으며 호식을 하는 이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할까? _본문 가운데
'대안이 없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핑계입니다.
시식가로 일하는 주인공 로자는 늘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꿈 속에 찾아와 질책하기도 합니다.
내가 히틀러를 위해서 일한다는 걸 알면 아버지는 뭐라고 할까. 어쩔 수 없었어요. 1933년에는 저는 고작 열여섯 살이었어요. 히틀러를 뽑은 건 제가 아니라고요. 그러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일단 용인하면 그 정권에 대한 책임은 네게도 있는 것이다. 네게는 정치적 죄악에 대해 면죄부가 없다, 로자. _본문 가운데
가혹한 시대를 타고난 개인에게는 평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 비해 더 큰 역할과 책임이 맡겨지는 듯합니다. 두려움과 공포라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고 시대가 요구하는 올바른 일을 한다는 것, 과연 쉽게 할 수 있을까요. 로자의 심정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테지만 로자의 아버지는 결코 타협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좁은 의미에서는 나치 독일을 묘사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의 정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작품입니다. '용인하는 자에 대한 책임'이라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2024.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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