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포터(Andrew Porter)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고
미국의 단편 작가 앤드루 포터(Andrew Porter, 1972)의 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입니다. 저자는 2008년 발표한 이 소설집으로 여러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며 작품성을 인정받게 됩니다. 열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는데 첫 번째 수록된 <구멍>이라는 작품부터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가 '어? 작가가 대체 어떤 사람이지??' 라는 호기심이 들게 하기 충분합니다.
앤드루 포터는 자신의 데뷔작에서 이미 작가로서의 장인정신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시간 글을 써온 내공이 깃든 작품집입니다.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네 번째로 수록된 단편입니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절묘한 상황 설정이 마치 잔잔한 단편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편안하고 평온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마치 평생토록 어떤 깊은 방식으로 그를 알아온 것 같았다. _본문 가운데
주인공은 물리학을 전공하는 20대 대학생입니다. 시험을 어렵게 출제한 교수 로버트에게 항의하듯 대부분의 학생들은 백지 답안을 서둘러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가버리고 주인공만 끝까지 남아 틀린 답안일지언정 페이지를 채워냅니다. 이후 로버트의 제안으로 같이 차를 한잔 하게 되고 둘 사이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서적 교감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어떤 장소에서 누군가와 시간을 보낸 경험이 마치 이 세상, 나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듯 여겨졌던 기억이 제게도 있습니다. 대개는 여행지에서 그런 경험을 합니다. 주인공에게는 로버트의 아파트가 그런 곳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에는 자유가 있었다.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어도 모두 다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아파트에서 나누는 모든 말들은 그 바깥의 세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을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_본문 가운데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그와의 결혼도 예정되어 있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로버트라는 존재는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수록된 열 편의 단편 속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만의 상처나 트라우마, 혹은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앤드루 포터는 그런 완벽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이 인생의 진리를 더듬어보길 바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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