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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얀 마텔(Yann Martel)의 「20세기의 셔츠」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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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Yann Martel)의 「20세기의 셔츠」를 읽고 


얀 마텔(1963)은 캐나다의 소설가로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The Facts Behind the Helsinki Roccamatios>로 데뷔 후 <파이 이야기 Life of Pi>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책 <20세기의 셔츠 Beatrice And Virgil>는 제겐 얀 마텔의 네 번째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를 중심 소재로 집단 학살, 홀로코스트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얀 마텔은 모든 작품의 프롤로그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쓰는 작가인데 <20세기의 셔츠> 프롤로그 역시 책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작가의 신념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 모든 문명에서 셔츠는 닳아 헤졌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셔츠가 어디에나 있듯이 홀로코스트도 어디에나 있다. 유럽의 유대인들은 집단으로 학살당한 최초의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이 마지막 희생자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_「프롤로그」 가운데 

 

얀 마텔은 언젠가 이 주제를 자신의 작품에서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우화'라는 조금은 낯선 장르를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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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이 책을 읽었는데 가는 가는 길에 1회독, 돌아오는 길에 2회독 했습니다. 두 번을 읽고 나서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어 책을 몇 번 뒤적였습니다. 

 

<20세기 셔츠>의 주인공 헨리는 작가입니다. 어느날 독자로부터 받은 희곡 일부분을 읽고 그 저자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독자는 박제사입니다. 예사롭지 않은 직업입니다. 희곡의 제목은 '호스피테이터성 쥘리앵의 전설'로 작품 속 주인공 쥘리앵은 죄 없는 동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인물로 심지어 그의 '구원'에 그 일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뭔가 암시하는 듯한 희곡입니다. 

 

 

영문판 원서 제목 <Beatrice And Virgil>은 박제사가 쓴 이 희곡에 등장하는 당나귀와 원숭이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박제사의 작업실에 있는 박제 동물이기도 합니다. 박제사와 박제 동물들,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그래, 그 돌이킬 수 없는 증오에 대한 얘깁니다. 버질과 베아트리스는 그런 증오에 '잠깐만!'이라고 소리칩니다." 그의 말투에 깃든 열의와 확신에 헨리는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었다. _본문 가운데 박제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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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와 박제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 읽은 후에는 적잖은 여운이 남습니다.  

 

얀 마텔은 홀로코스트를 '20세기의 셔츠'라고 말합니다. 이 땅의 어디에서나 입을 수 있는 셔츠. 그러니까 홀로코스트의 기원이 바로 우리 옆에, 우리 심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셔츠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이 작품을 썼다고 밝힙니다.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의 <차별 감정의 철학>이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차별 감정이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홀로코스트가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는 이유, 두 작가가 21세기의 독자들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닮았습니다.  


2024.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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