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헤이스(Bill Hayes)의 「인섬니악 시티」를 읽고
<인섬니악 시티 Insomniac City>라는 책의 제목만 봤을 땐 불면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등장하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아랫줄에 적힌 부제가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해 줍니다.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 New York, Oliver, And Me>.
영국의 신경의학자인 올리버 색스(Oliver Wolf Sacks, 1933-2015)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정신질환을 다룬 심리학 서적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네요. 신경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와도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세기 초에 태어난 올리버 색스의 고뇌가 깊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봅니다.
이 책 <인섬니악 시티>는 올리버 색스의 연인 빌 헤이스(William Brooke Hayes, 1961)의 회고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빌 헤이스는 <인섬니악 시티>에서 뉴욕과 뉴요커들에 대한 단상들, 그리고 올리버 색스가 2015년 이 세상을 떠날때까지 두 사람이 공유한 시간들을 섬세한 필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리버 색스의 어록을 책의 첫 페이지에 실은 것을 보면 저자가 이 책을 올리버 색스에게 헌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죽음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더 두렵다." 올리버 색스 2009.10.31.
책의 내용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이러한 가치관대로 생의 마지막까지 학문과 저술활동에 몰두했으며 저자 빌 헤이스는 항상 곁에서 그를 도왔습니다.
주름진 손, 두툼한 돋보기 안경, 굽은 어깨를 한 백발의 노인이 책상에 앉아 집필활동을 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넘어선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올리버 색스뿐만 아니라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도 이런 유사한 사진을 남겼습니다. 작가란 살아 숨 쉬는 한 글을 쓰는 존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빌 헤이스는 자신보다 서른살 가량 많은 올리버 색스를 소년 같은 순수함을 가진 사람, 총명하고 겸손하며 다정한 사람이라 묘사합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실린 에피소드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빌 헤이스의 이러한 표현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올리버 색스는 사람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그것을 통한 자신의 소명을 잘 수행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담아 지금 이 시기 이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글로 쓰는 것이지." _본문 가운데 올리버 색스의 말
저자 빌 헤이스는 올리버 색스의 이 말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연인을 향한 애틋함과 존경이 묻어나는 고백과도 같은 문장입니다.
2024.5. 씀.
'[책] 소설 시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스 누테붐(Cees Nooteboom)의 「의식」을 읽고 (0) | 2024.05.18 |
---|---|
앤드루 포터(Andrew Porter)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고 (0) | 2024.05.17 |
얀 마텔(Yann Martel)의 「20세기의 셔츠」를 읽고 (2) | 2024.05.15 |
알베르트 키츨러의「나를 살리는 철학」을 읽고 (2) | 2024.05.14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0) | 2024.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