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니 윌리스(Connie Willis)의 「화재감시원: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를 읽고
고뇌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아무리 많은 거절 쪽지를 받고, 아무리 낙담했다 하더라도 계속 쓰세요."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_Connie Willis,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 후기 가운데
미국의 SF 작가 코니 윌리스(Connie Willis, 1945)의 중단편을 모은 '코니 윌리스 걸작선' 1편, <화재감시원>입니다.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 휴고상과 네뷸러상 등 메이저 문학상을 받은 수작들을 모아 엮었습니다. 작품들 사이사이 코니 윌리스의 지극히 사적인 후기가 수록돼 있는데 작품+작가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시도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은 코니 윌리스의 대표작인 「화재감시원 Fire Watch(1985)」 외에 4편의 중단편인데 개인적으로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 A Letter from The Clearys」가 가장 좋았습니다.
파이크스피크 산 밑에 사는 주인공 소녀 린은 짖지 않는 개 스티치를 데리고 마을 우체국에 내려가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를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재작년 린의 집에 놀러오기로 한 클리어리 가족과 연락이 끊긴 지 2년 만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냥 안 오기로 했던 걸까요, 아니면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걸까요?" _린
순수하고, 궁금한게 많고, 약간 눈치 없는 명랑한 주인공 린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빨강머리 앤이 연상됩니다.
린의 부모, 린의 오빠 데이비드, 이웃 탤벗 아줌마까지 모두가 조금씩 이상합니다.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자주 상처가 나는 린에게 엄마는 특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덴 거예요." 나는 말했다. "그냥 덴 거라고요." 엄마는 뭔가가 옮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먼젓번에 앉은 딱지 가장자리를 건드렸다. "덴 거예요." "방사능 병이 아니라 그냥 덴 거라니까요!" _린
이들 가족과 클리어리 가족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소설 속에는 여러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어딘가 불안하고 예민해 보이는 가족, 이웃의 모습과 그 사건들이 조금씩 연결고리를 찾아갑니다. 린이 마을 우체국에서 찾아온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는 그런 그들의 신경과민을 더 크게 자극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엄마 말이 맞아. 사람들은 다 신경과민으로 죽을 거야. 지난 여름에 우리는 모두 조금씩 미쳐 있었어. 그런데 넌 편지를 집에 가져오는 따위의 짓거리로 모두가 그간 일어났던 일이며,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시 떠올리도록...." _데이비드
<후기>에서 코니 윌리스는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 A Letter from The Clearys」 집필 아이디어를 '우체국'에서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거절당하는 자신의 작품을 출판사에 보내고, 거절 쪽지를 수신하고, 다시 다른 출판사에 부치고, 그 모든 과정이 우체국에서 일어났으며 그것에서 착안해 이 작품을 썼습니다.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은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를 발견한 린은 코니 윌리스 자신을 닮았습니다.
2024.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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