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치오 실로네(Ignazio Silone)의 「빵과 포도주 Vino e Pane」를 읽고
책의 표제에서부터 기독교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작품입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버리고 마침내는 그리스도교로 신념을 확정한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작가 이냐치오 실로네(Ignazio Silone, 1900-1978)의 1937년 소설 <빵과 포도주 Vino e Pane>입니다. 이 작품은 전체주의 정권이 장악한 20세기 유럽의 어둠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한 이냐치오 실로네의 자전적 요소가 담긴 작품으로 그가 이탈리아에서 정치생활을 하던 중 좌우 진영 모두로부터 추방당해 1930년 스위스로 망명하는 동안 집필했습니다.
권력자들의 폭압과 위선, 가난한 소시민의 열악한 삶, 잃어버린 정치적 신념 같은 것들이 <빵과 포도주>의 소재가 됩니다.
이냐치오 실로네의 삶이 투영된 피에트로 스피나라는 혁명가가 <빵과 포도주>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파시스트 경찰을 피해 고향을 떠나 이름을 버리고 외국을 전전하다 급격히 늙어 보이게 하는 약품으로 얼굴을 감추고 사제로 위장한 채 가난한 소작농이 사는 마을에 숨어 살아갑니다.
암울한 정치적인 상황에 혁명가로 살아가는 일, 피에트로는 눈치오와의 대화에서 '자유'에 관한 자신의 신념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유란 무슨 선물로 얻어지는 게 아닐세. 독재 체제 속에 살면서도 자유로울 수가 있다네. 그 독재에 대항하여 싸우는 단 한가지의 경우에 말일세.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자는 자유롭네. 민주적인 나라에 살면서도 정신적으로 게으르고 둔하고 굴종적이라면 자유롭지 못하지. 폭력적인 강압이 없다 하더라도 그건 곧 노예일세." _피에트로
상황에 따라 잠시 순응하고 굴복하는 '임시적인 삶'을 사는 게 모든 인간의 삶이라 말하는 눈치오에게 정치에 관한 명확한 철학을 가진 피에트로는 남다른 인물입니다.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트리는 말을 쉼없이 쏟아내는 피에트로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닮았습니다. 그리스도교로 회심한 이냐치오 실로네의 신앙적 신념이 <빵과 포도주>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운명이란 체념 잘하는 게으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걸세." _피에트로
피에트로 스피나의 말, 즉 이냐치오 실로네의 말은 명언 아닌 것을 골라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빵과 포도주 Vino e Pane>라는 표제를 뒷받침해 주는 피에트로의 생각에 대해 책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리스도교에서 빵은 예수의 몸, 포도주는 예수의 피를 상징합니다.
"빵은 많은 이삭의 낱알들로 만들어집니다. 포도주는 많은 포도알로 만들어집니다. 비슷한 것들이 똑같이 모여 뭉치는 하나의 결합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진실과 형제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함께 어울려 화목하게 지내는 것들이지요." _피에트로
조지 오웰이 그를 "혁명가이자 진실한 인간"이라고 칭한 것도, 윌리엄 포크너와 알베르 카뮈가 그를 "위대함"이라는 단어로 묘사한 것도, 그의 위대한 삶과 말에 조금도 모순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정치에 몸을 담은 사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2024.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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