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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차가운 피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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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산체스 피뇰(Albert Sanchez Pinol)의 「차가운 피부: 내 안의 괴물 La pell freda」를 읽고


어릴 적 괴물 나오는 동화를 많이 읽었는데 당시 저 괴물들은 인간을 뭐라고 생각할까 궁금했습니다. 피차 괴물로 여겨지는 게 아닐까 하고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Albert Sanchez Pinol, 1965)의 첫 소설, 2002년 출간된 <차가운 피부: 내 안의 괴물 La pell freda>에도 진짜 '괴물'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이름 모를 한 남자입니다. 1920년대 남극 근처 어느 섬에 기상관으로 파견된 그는 이곳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을 겪게 됩니다. 그 일은 그가 섬에서 보내는 첫날 밤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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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공포물의 장점은 소설 속 장치 하나하나가 단서로 작용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다양한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남자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해변에 마치 절단된 인간의 사지 같은 나무토막들이 박힌 것을 봅니다. 그리고 '어떤 팔'이 문 밑으로 쑥 들어오고 남자는 혼비백산해서 사투를 벌이다 괴물을 불구로 만들어 버립니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그는 쓰러집니다. 

 

내 안에서 두 세 가지의 낯선 감정이 들끓었다. 잠시 후 수면 위로 아주 작은 태양이 떠올랐다. 남쪽 고위도 지역의 여름밤은 매우 짧다. 그러나 내겐 가장 긴 밤이었다.

 

이 장면에서 집에 나방 한 마리가 들어오면 무서워 비명을 지르며 두꺼운 책을 휘두르는 제 모습, 그리고 가루가 되어버린 나방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일까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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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는 등대지기 바티스 카포가 살고 있는데 그는 괴물 중 암컷 한 마리를 사육하고 있으며 그 이상의 짓도 합니다. 두 남자는 여러 수단으로 괴물들을 물리치는데 힘을 모읍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잔인하게 공격당하고 죽어나가는 괴물들을 향한 연민이 일어납니다.

 

주인공 남자가 처음 괴물을 마주쳤을 때 가졌던 '두세 가지의 낯선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그를 살갑게 대하는 부모 잃은 새끼 괴물에게 측은한 감정도 느낍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고요. 우리가 침입자잖아요. 여긴 저들의 유일한 땅이고요. 우리는 요새와 무기를 가지고 이 땅을 점령한 겁니다. 그 정도면 저들이 우리를 공격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나요?" 

 

바닷 속 세계에 사는 파충류 같은 그 괴물들은 공격의 대상일까 아니면 그들이 원주민이고 인간이 침입자인 것일까, 주인공 남자는 모든 상황을 직시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여러 각도로 해석될 수 있지만 자신의 터전을 지켜내려는 원주민을 암시하는 괴물들의  통해 문화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낫고 무엇이 부족한가, '계몽', '문명화', '근대화'라는 기치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역사 속에서 고통당해왔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차가운 피부>의 저자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역시 스페인의 소수민족 카탈루냐 사람입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괴물들에 대한 강한 연민을 갖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024.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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