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커튼 The Curtain: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를 읽고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의 12년 만의 에세이, 2006년 발표한 <커튼 The Curtain: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현대 소설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의의를 날카롭게 분석한 '현대소설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가란 어떠해야 하는가,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하는가, 등등에 관한 밀란 쿤데라의 견해가 담겨있습니다.
표제인 '커튼(Curtain)'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궁금해서 이 책의 4부와 6부 소제목을 따라 '찢어진 커튼'에 대한 이야기부터 읽어봅니다.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숨기는 '커튼',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튼 너머를 보지 못하는데 그 커튼을 찢고 뒤에 가려진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고, 마주하게 해야 한다고 밀란 쿤데라는 강조합니다.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잇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그 자리에 멈춰선 사람의 태도도 변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의 나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삶의 나이는 커튼 뒤에 숨어 있다. _「6부. 찢어진 커튼」, '커튼 뒤에 숨겨진 삶의 나이'
밀란 쿤데라는 또한 젊음의 자유와 노년의 자유는 서로 만나지 않는 대륙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젊은이는 무리에 강하고 노인은 고독에 강하다."라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젊음의 자유와 노년의 자유가 다르다는 것, 정말, 그럴듯합니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인 밀란 쿤데라는 소련이 자신의 조국을 점령한 후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문화적 다양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특히 체코와 소련이 속한 유럽대륙에 말이죠.
러시아가 내 작은 조국을 그들 마음대로 주물럭거릴 때, 나는 유럽에 대한 나의 이상을 다음과 같이 표명한 바 있다.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다양성을. _2부. 세계 문학
다양성을 잃은 세계 문학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읽다가 무릎을 치며 제 친구에게 공유한 구절입니다. 그 친구는 수시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공유하며 제게 읽어보라고 권유합니다.
"친구여, 내 앞에 펼쳐진 인생은 짧아요. 내가 당신 작가를 위해 소비한 시간의 분량이 바닥나 버렸어요." _「4부. 소설가란 무엇인가?」 '독서는 길고, 인생은 짧다'
친구에게 곰브로비치를 추천한 밀란 쿤데라, 그 친구가 하필 그 작가의 사후 출판작을 읽고는 왜 그 작가를 추천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자 밀란 쿤데라가 열을 내며 작품명을 구체적으로 추천해주자 친구가 이런 답을 내놓은 것인데, 그야말로 '현답'입니다.
<커튼> 4부 '소설가란 무엇인가?'에서는 소설의 의미에 대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요약해서 옮겨봅니다.
"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독자가 된다.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광학 기구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자기 안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진실과 대면하게 하는 것이다" _마르셀 프루스트
멋진 작가입니다. 밀란 쿤데라, 마르셀 프루스트 모두.
2024.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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