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를로르(Francois Lelord)의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을 읽고
'꾸뻬 씨' 시리즈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 프랑수아 를로르(Francois Lelord, 1953)의 소설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Ulik au pays du desordre amoureux>입니다.
문화의 다양성, 영혼의 중요성 같은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으로 주인공은 책 제목에서도 언급된 북극의 이누이트 청년 울릭(Ulik)입니다. 어릴 적 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울릭은 어려움을 딛고 이누이트의 사냥꾼으로 성장합니다. 자신이 자란 이누이트 마을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고 울릭은 대사 자격으로 카블루나ㅡ백인, 유럽인, 이누이트가 아닌 사람(아시아인?)ㅡ의 나라로 떠납니다.
돌아오면 사랑하는 여인 나바라나바와 결혼하게 해 주겠다는 부족의 조건으로.
울릭이 가게 된 카블루나 나라는 부유하고 직업이 다양한 곳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카블루나 사람들은 남녀 모두 젊음을 숭상하고 흰머리를 염색하고 피부를 정성껏 가꾸는 덕분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주름진 손등이 위대한 추장의 덕목인 이누이트 문화와는 정반대입니다.
영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직업에 있어서는 세상 어디보다 부유한 나라! 울릭은 직업이라는 카블루나 말을 영의 반의어로 기억하기로 했다.
도시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혼자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카블루나 나라에서는 일반적입니다. 울릭은 이러한 카블루나를 경험 하며 나름의 생각을 적고 있습니다.
남녀가 짝을 이뤄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삶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지 여전히 궁금증은 남습니다. 희생이라는 단어를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기는 이 시대가 지나고, 결국 아무도 그 말의 의미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온다면요.
가끔 등장하는 색연필 그림들이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에 잘 어울립니다. 동물원에서 북극곰을 만난 울릭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주어진 일을 마무리하고 돈도 넉넉히 벌게 된 울릭은 나바라나바와의 재회를 꿈꾸며 다시 이누이트 부족이 사는 북극으로 갑니다. 그가 마주하게 될 이누이트와 나바라나바의 슬픈 상황은 예상하지도 못한 채 말이죠.
울릭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이누이트의 전통과 생활양식은 '덩치 큰 곰처럼 조용히 들어와 집 안을 박살내는 카블루나 문명'에게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나바라나바를 데리고 울릭은 조용히 사는 삶을 택합니다.
욕망을 이루며 사는 삶, 욕망을 다스리며 사는 삶, 작은 것을 지향하는 삶, 성장과 발전을 지향하는 삶, 어느 것이 더 낫다는 가치 판단은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에 나오지 않습니다. 해석은 늘 독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울릭이 이누이트와 카블루나를 모두 경험해 봤기에 어떤 것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배운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2024.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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