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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레일라 슬리마니(Leila Slimani)의 「달콤한 노래」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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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 슬리마니(Leila Slimani)의 「달콤한 노래 Chanson Douce」를 읽고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충격적인 첫 문장이 가진 힘을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가져가는 작품, 프랑스계 모로코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Leila Slimani, 1981)의 <달콤한 노래 Chanson Douce>입니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가지 '여성들'에 의해 꾸려집니다. 

 

두 아이의 엄마 미리암은 유망한 변호사였던 미리암은 아이가 둘이 되면서 육아, 가사, 일, 복잡한 상황에 침울해집니다. 남편 폴과 상의 끝에 보모를 구하기로 합니다. 까다로운 면접 끝에 매끈한 얼굴, 자연스러운 미소, 떨림 없는 입술, 침착하고 온화한 인상의 완벽한 보모 '루이즈'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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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보모 루이즈는 놀랍도록 빠르고 능숙하게 미리암 가족의 삶에 스며듭니다. 두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음식이며 청소며 빨래까지 가사도 빈틈없이 해냅니다.

 

그들의 가정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루이즈가 있다.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이 건조물을 있는 힘을 다해 두 팔로 지탱해 주는 루이즈. 이 보모는 무대 뒤에서 조용히, 힘차게, 바삐 움직인다. 그들 가정의 행복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원천이다. 

 

보모의 출근 시간은 점점 당겨지고, 퇴근은 점점 늦어집니다. 밤을 넘기는 날도 생깁니다.  

 

 

루이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도 많이 들려줍니다. 고아, 길 잃은 어린 여자아이, 어딘가에 갇힌 공주, 코가 비틀어진 새, 다리가 하나인 곰, 침울한 유니콘 등이 나오는 루이즈의 이야기는 늘 결말이 잔혹합니다. 그녀 안에 얼마나 깊은 어둠과 고독이 잠들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잔혹한 이야기들을 그녀는 어떤 검은 호수, 어떤 깊은 숲에 가서 낚아온 것일까?

 

<달콤한 노래>는 살인에 대해 묘사하거나 범인을 추적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저자 레일라 슬리마니는 이 책에 대해 "나는 살인에 대해 설명하기보다는 모욕의 순간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소설의 거의 대부분은 루이즈, 미리암, 그리고 다른 여성들에 관한 상세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데 그 모든 부분에 몰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사실적이라서.

 

예컨대 변호사 미리암이 보모 루이즈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자기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루이즈에게 준다. 이런 건 어딘가 모욕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해온 지 오래이면서도.

 

미리암은 루이즈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애쓰고 질투를 불러일으키거나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자신이나 아이들을 위한 쇼핑을 할 때면 오래된 헝겊 가방에 새 옷들을 감췄다가 루이즈가 가고 난 뒤에야 꺼내놓는다. 

 

루이즈가 받았을 굴욕감과 비참함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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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는 아이들이 다 자라 자신이 이 가정에 더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종일 어린 두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하는 데 조금씩 지쳐갑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정서도 메말라갑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 루이즈는 검은 늪에 휩쓸리고 맙니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 죽어야한다. 루이즈가 길을 걸을 때면 음산한 이 후렴구가 그녀를 따라다닌다. 

 

 

사고 후 담당 경감 니나가 범인을 대신해 현장검증에 나서기로 합니다.

 

'신들린 상태에 이를 때 고통 가운데 진실이 솟아 오르고 과거가 새로운 빛으로 밝혀지는 것처럼' 범행의 동기를 밝혀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독자는 현장검증을 볼 수 없지만 니나의 생각을 통해 그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아파트를, 이 세탁기를, 더러운 이 개수대를, 상자에서 나와 탁자 아래에서 죽은 저 장난감들을... 악쓰는 소리와 울음소리를 멈추게 하려고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는 루이즈. 방에서 부엌으로, 욕실에서 부엌으로, 쓰레기통에서 의류 건조기로, 침대에서 현관 벽장으로, 발코니에서 욕실로, 다시 와서 또 반복하는...

 

소설은 끝내 범행의 동기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달콤한 노래>에서 레일라 슬리마니가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레일라 슬리마니는 엄마 미리암, 여성 변호사, 여성 경감 니나, 여성 보모 루이즈, 폴의 모친, 이웃집 여성 그랭베르, 루이즈의 딸 스테파니 등등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습니다. 일상에서 그냥 스쳐지나갔던, 보이지 않지만 너무도 생생한, 여성인 자신들조차 몰랐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 말이죠.  


2024.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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