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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선: 군중 속의 사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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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선: 군중 속의 사람」을 읽고


환상 소설이나 탐정 소설 같기도 하고 스릴러물 같기도 한 광기 서린 이야기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의 단편 14편을 묶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입니다. 작품 하나하나 모두 그로테스크한 소재로 '에드거 앨런 포'스러운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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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단편 중 <군중 속의 사람 The Man of the Crowd>이 특히 매력적입니다. 몇몇 문장은 읽는 도중 여러 번 되돌아가 읽고 또 읽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가 1840년 12월 발표한 소설로 분주한 런던 거리를 정신없이 배회하는 한 남자를 따라가는 화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장 드 라 브뤼에르(Jean de La Bruyere)의 작품에서 인용한 "혼자일 수 없는 이 엄청난 불행(Ce grand malheur, de ne pouvoir etre seul)"이라는 서문으로 소개됩니다. 

 

어떤 독일 책을 두고 "에어 라스트 지히 니히트 레젠", 즉 "그것은 읽히기를 거부한다."라고 한 것은 참 적확한 표현이다. 세상에는 정체를 밝히기를 거부하는 비밀들이 있는 법이다. 인간의 양심은 이따금씩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짐, 오로지 무덤 속에서만 부릴 수 있는 짐을 지게 된다.

 

읽히기 거부하는 책, 범죄 이야기인가, 중대한 비밀에 관한 것인가, 도입부에서부터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두근두근 설레게합니다.  

 

 

이름 모를 병을 앓은 후, 화자인 남자는 런던의 한 커피숍에 앉아 창밖의 군중을 관찰합니다. 주의깊게 관찰하다 보니 이제 그들을 유형별로 분류하는 수준에 이릅니다. 

 

행인들은 이런저런 집단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곧 자잘한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해서,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모습과 옷차림과 태도, 걸음걸이, 얼굴 그리고 표정까지 아주 세심한 흥미를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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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65세에서 70세쯤 되어 보이는 한 노인의 얼굴이 화자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는 여지껏 보아온 군중의 무리 중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남자는 홀린 듯 그 노인을 쫓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 얼굴에서 뛰어난 지력과 조심성, 궁핍과 탐욕, 냉혹, 악의, 피에 굶주림, 의기양양, 희희낙락, 극단적 공포, 절망 중에서도 최악의 절망을 읽을 수 있었다. "얼마나 사나운 역사가 저 사람의 가슴속에 기록되어 있을 것인가!" 

 

남자는 그 노인을 계속 시야에 넣어 두고 싶어 뒤를 밟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노인은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저녁까지 24시간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방황하며 런던 거리를 떠돕니다.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중 속을 벗어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허기와 피로에 지친 남자는 노인 앞으로 다가가 정면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는 화자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 채' 다시 발걸음을 엄숙하게 옮깁니다. 

 

"이 노인은." 나는 마침내 말했다. "지능이 뛰어난 흉악범 같은 사람이다. 그는 혼자이기를 거부한다. 그는 군중 속의 사람이다. '읽히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신이 내려 주시는 가장 거대한 자비 중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러 암시에서 그 노인은 화자의 은밀한 면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 남자는 결국 한 사람의 양면인 것입니다. 노인이 화자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표현에서 내적인 분열 역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단편들도 재미있지만 단연 <군중 속의 사람>이 압도적ㅡ<검은 고양이>는 지난번 따로 읽었으니 열외로 하고 말이죠ㅡ입니다. 


2024.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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