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를 읽고
대학교수이자 시인 안도현(1961)의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입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1996)>를 쓴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시집은 그가 2020년에 8년 만에 낸 시집입니다.
안도현 시인 하면 연탄이 떠오릅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 한 장」, 이 두 편의 시 덕분인데 짧지만 인상적인 시구가 잔상으로 남아있습니다.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에는 다양한 형식의 시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시집의 맨 첫 장에 실린 작품은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시 「그릇」입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게 됩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_「그릇」 가운데
안도현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갈수록 자신은 그저 누군가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는 것일 뿐, 정작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음을 깨닫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겸손은 연륜 있는 작가들의 공통점인가 봅니다.
길가에 핀 꽃을 꺾지 마라 / 꽃을 꺾었거든 손에서 버리지 마라 / 누가 꽃을 버렸다 해도 손가락질하지 마라 _「귀띔」
낮은 소리로 넌지시 교훈하는 시입니다.
이름에 매달릴 거 없다 / 알아도 꽃이고 몰라도 꽃이다 / 알면 아는 대로 / 모르면 모르는 대로 _「식물도감」 가운데
찬찬히 식물도감을 써 내려가다 마지막에 '알아도 꽃이고 몰라도 꽃'이라는 진리를 툭 던집니다. 꽃도 그러하듯 사람도 앎과 모름의 경계에서 세상에 왔다가 나름대로 살다 사라지는, 그것이 생명의 본질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대체로 무지몽매한 자일수록 시로 무엇을 말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라고 하는데 팔을 걷어붙이지 않고도 이런 시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2024.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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