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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헬렌 한프(Helene Hanff)의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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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한프(Helene Hanff)의 「채링크로스 84번지 Charing cross road 84」를 읽고


20세기 중반의 아날로그 감성이 오롯이 깃든 책입니다. 

 

1949년부터 1969년까지 약 20년간 미국 뉴욕의 도서 구매자와 영국 런던의 책방 직원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 Charing cross road 84>입니다. 저자는 도서 구매자인 헬렌 한프(Helene Hanff, 1916-1997)로 1949년 10월 5일, 희귀 서적을 구하기 위해 런던 채링크로스가 84번지 '마크스 서점(Marks & Co.)'에 편지로 첫 주문서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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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5일

 

저는 희귀 고서적에 취미가 있는 가난한 작가입니다. 제가 절박하게 구하는 책들의 목록을 동봉합니다. 목록 중 깨끗하면서 한 권당 5달러가 넘지 않는 중고책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구매 주문으로 여기고 발송해 주시겠습니까? 

 

(미스) 헬렌 한프 드림

 

편지에서 헬렌 한프의 완벽주의ㅡ정확하게는 '일 잘하는, 영리한'ㅡ 성향이 드러납니다. 상대가 두 번 묻지 않도록, 혼란이 없도록 최대한의 정보를 담아 보냅니다. 심지어 당시 30대 중반이지만 결혼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적절한 호칭인 '미스'까지 친절히 덧붙여 줍니다. 

 

첫 답장은 20일 뒤, 1949년 10월 25일에 작성됩니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영국 런던까지 국제우편 한 번 주고받는데 1개월이 넘게 소요되네요. 

 

1949년 10월 25일

 

친애하는 부인, 

저희는 부인의 문제 가운데 3분의 2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부인께서 원하시는 해즐릿의 수필 세 편은...

 

친절하고 사무적인 '마크스 & Co.' 직원은 눈치 없이 헬렌 한프를 '부인'이라 칭합니다. 다음번 편지에서 헬렌 한프가 한 마디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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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책을 잘 받았다는 편지를 보내면서 '마크스 & Co.'가 보내준 책에 대한 감탄과 감사를 곁들입니다. 헬렌 한프는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추신으로는 재차 적합한 호칭을 사용해 줄 것을 완고한 표현으로 부탁합니다.

 

이 부드러운 고급 피지와 뽀얀 상앗빛 책장은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겠고요. 미국 책들의 창백한 백지와 딱딱한 마분지 표지만 보아온 저로서는 책을 만지는 일이 이런 즐거움도 줄 수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답니다.

 

..... '부인'이라는 호칭이 이쪽에서 사용하는 그런 뜻이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재미있습니다.

 

이후 헬렌 한프와 채링크로스가 84번지 '마크스 서점(Marks & Co.)'의 주인 가족과 직원들ㅡ주로 프랭크 도엘ㅡ은 20여 년간 책을 주문하고, 청구서를 보내는 형식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전쟁 후 영국의 식량 부족 사태 동안 헬렌 한프는 그들에게 음식 꾸러미를 보내고, 보답으로 선물도 받습니다.

 

 

1968년 12월, 책방 관리인 프랭크 도엘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의 편지도 멈춥니다.

 

현재 런던 채링크로스가 84번지와 헬렌 한프의 뉴욕 아파트에는 기념 동판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후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영화로도 제작되고 여러 작품에 소재로 사용됩니다. 

 

헬렌 한프의 마지막 당부 글에서 영국의 어느 책방과 그 책방을 사랑한 미국의 한 독자가 나눈 20년간의 깊은 우정을 감히 짐작해봅니다. 

 

"혹 채링크로스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_헬렌


2024.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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