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반쪼가리 자작」을 읽고

728x90
반응형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반쪼가리 자작 Il visconte dimezzato」을 읽고


우리 안에 공존하는 선과 악, 만약 그 가운데 하나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분열하지 않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덕분에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이 같은 질문에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언론인이자 작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1923-1985)의 소설 <반쪼가리 자작 Il visconte dimezzato>입니다.

 

728x90

 

소설의 주인공 메다르도 자작은 갓 청년기에 접어들던 시기에 전쟁에서 폭탄을 맞고 몸이 그야말로 반쪽이 납니다. 이후 한쪽 눈, 반쪽 입, 한쪽 콧구멍, 한쪽 팔, 한쪽 다리로 고향에 돌아온 '반쪼가리 자작'은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악한 폭정을 이어갑니다. 

 

무시무시한 폭정의 수위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로 여기는 밀렵을 했다는 이유로 교수형, 그들을 막지 못한 수비대도 교수형, 이렇게 하루에 스무 명 정도가 교수형을 당할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일, 꽃, 버섯, 나비 같이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을 반쪽 내버립니다.

 

소설 속 화자인 조카에게 독버섯을 튀겨먹으라고 건네주거나, 벌집에 손을 집어넣게 하는 악행이 연일 비일비재합니다. 

 

 

<반쪼가리 자작> 메다르도는 자신의 이런 악한 모습에 문득 의문을 품습니다. 

 

자작은 혼잣말을 했다.

 

"내 날카로운 감정 속에는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과 일치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 그 어리석은 감정이 그다지도 중요하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그렇다면 틀림없이 멋지고 무시무시할 거야."

 

그래서 그는 파멜라를 사랑하기로 결정했다. _본문 가운데

 

그러나 그것 조차 더 멋지고 무시무시해지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된 껍데기뿐인 자기 성찰에 불과합니다. 메다르도 자작에겐 인간적인 감정이라는 것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반응형

 

어느 날 테랄바 마을에 또 다른 반쪽, 오로지 '선'만을 행하는 메다르도 자작이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균형 감각을 잃은 '선'함은 성경 속 율법주의자들의 냉정함을 닮았습니다. 그는 매번 감시하고, 설교하며, 여기저기 그런 이야기를 하고다닙니다. 반쪼가리 '선'함은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내 마침내 메다르도 자작의 '악'한 반쪽과 '선'한 반쪽이 하나로 결합합니다. 의사 트렐로니가 이리 꿰매고 저리 꿰맨 결과입니다. 

 

차츰차츰 균형이 잡혀 나갔다. "이제 치유된 거야."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_본문 가운데

 

선과 악의 분열과 결합, '인간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 '반쪼가리' 인간이 비단 메다르도 자작뿐일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악한' 반쪽의 사악한 폭정, '선한' 반쪽의 인간미 없는 선행에 시달리는 마을사람들에게도 다양한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이 만드는 도구가 사형대로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성실하게 주어진 일만 하는 피에트로키오, 허랑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한센인들, 종교 윤리만을 강요하는 위그노들, 이들도 겉모습은 온전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반쪼가리 인간일지 모릅니다. 


2024.2.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