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도이그(Andrew Doig)의 「죽음의 역사 This Mortal Coil」를 읽고
인간의 죽음은 과거에도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지만 전염병, 기근, 전쟁, 당뇨, 심장질환, 암, 치매 등 죽음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즉, 인간은 시기별 특정 사망 원인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류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 영국의 생화학자 앤드루 도이그(Andrew Doig)의 <죽음의 역사 This Mortal Coil>입니다.
인류의 생존을 가장 크게, 가장 오래전부터 위협해 온 것은 역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의학이 엄청나게 발전했음에도 인간은 여전히 전염병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신종 바이러스가 진화하고 비행기, 기차 등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퍼집니다. 2019년 코로나 팬데믹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죽음의 역사>에서는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인간을 바이러스의 '식량 공급원'이라고 표현합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관점에서 보면, 79억 명의 인구는 단순히 엄청나게 많은 식량 공급원일 뿐이다. _「2부. 전염병」
전염병에게 우호적인 환경으로 도시화를 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건강에 위해가 되는 상황이 불가피하게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역사>에서도 인류 생존에 부정적인 조건으로 농업혁명과 산업화 등을 여러 챕터에 걸쳐 언급하고 있습니다.
200년 전 시골의 삶은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도시에서의 삶보다는 훨씬 건강했다. /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으면 좋지만 건강에는 산업화된 도시보다 시골생활이 좋았다. _「2부. 전염병」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1944년 미네소타 대학에서 진행한 '기아의 심리적 영향'에 관한 연구입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실험대상자 36명을 대상으로 첫 3개월은 평범한 식사, 다음 6개월은 절반만 섭취하는 배고픈 시기, 이후 3개월은 회복기가 주어집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우울증, 조증, 분노, 과민, 불안, 무관심, 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회적 접촉을 피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내성적으로 변해 외부와 담을 쌓았으며, 스스로를 사회 부적응자라고 느낍니다. 한 명은 손가락 두 개를 자르리까지 합니다. 참가자 중 한 명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만나기가 너무 귀찮다. 노는 것도 재미없다. TV를 볼 때면 누군가 음식을 먹는 장면이 가장 흥미롭다." _「3부. 내가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
오늘날 '먹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어떠한 '기아감', '정서적 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 앤드루 도이그는 <죽음의 역사> 후반부 「결론」에서 앞으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한 여러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21세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류 역사에 큰 위협을 경험한 우리가 반드시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들입니다.
천연두의 대부로 알려진 18세기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가 논문에 남긴 말이 <죽음의 역사> 중간쯤 수록돼 있습니다.
"자연이 정해준 원래 인간의 자리를 벗어나 일탈하면 다양한 질병을 얻게 되기 쉽다." _Edward Jenner
혹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그때부터 질병은 인류의 숙명이었을까요. '원래의 자리'가 어디인지, 같이 고민해볼 일입니다.
2024.2. 씀.
'[책] 소설 시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 베델(Paul Bedel)의 「농부로 사는 즐거움」을 읽고 (2) | 2024.02.15 |
---|---|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반쪼가리 자작」을 읽고 (4) | 2024.02.14 |
클라라 마리아 바구스(Clara Maria Bagus)의 「봄을 찾아 떠난 남자」를 읽고 (2) | 2024.02.13 |
이마무라 나쓰코의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를 읽고 (2) | 2024.02.12 |
토어 세이들러(Tor Seidler)의 「맏이」를 읽고 (0) | 2024.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