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먼로(Alice Munro)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읽고
친구와 대화 나누듯 편안한 글 속에 가볍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Alice Munro, 1931)의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 Dance of the Happy Shades>입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포함한 총 열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앨리스 먼로가 1968년 내놓은 첫 소설집으로 당시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이름을 알립니다.
"아무래도 작업실을 얻어야겠어요."
내가 듣기에도 허황한 소리였다. 구태여 작업실을 얻어야 할 까닭이 뭔가. 집이 있잖은가, 쾌적하고 널찍하고 식당과 침실과 욕실에다 정원까지 있으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_「작업실」 가운데
얼마 전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친구가 '작업실'을 얻는 문제로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겠다. 그래, 그렇겠어."라고 호응은 했지만 전적으로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 작품집에 실린 「작업실」이라는 단편에 그때 친구가 했던 말들이 그대로 적혀 있는 걸 보니 작가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 더 공감하게 됩니다.
.... 바로 이것이 내가 작업실을 얻으려는 까닭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의 주인공은 적당한 작업실을 얻는 데는 실패합니다.
지금은 복지국가로 이름난 캐나다 역시 1968년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는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리 편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 표제작 「행복한 그림자의 춤」입니다.
집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마살레스 선생님이 주최하는 작은 파티가 열리는 하루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날은 특별히 특수학교 아이들이 연주자로 초대되었습니다.
거실 분위기가, 해괴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꿈속 같다. 우리 엄마와 다른 여자들이 수런대는 소리가 귀에 들릴 만큼 크다. "그럼요. 저런 아이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건 옳지도 않고 나는 혐오감도 없지만, 지적장애아들의 연주를 들으러 오라는 말은 아무한테도 듣지 못했다고요. 도대체 이 파티가 무슨 파티래요?" _「행복한 그림자의 춤」 가운데
아이들과 부모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살레스 선생님은 평소처럼 미소 지으며 피아노 옆에 앉아 한 장애인 소녀의 연주를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마살레스 선생님은 그 여자애가 오늘처럼 연주를 하게 될 날을 늘 기대했고, 그것을 당연해하고 흐뭇해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기적을 믿는 사람은 정말로 기적이 일어날 때 법석을 떨지 않는다.
마살레스 선생님 집에서 열린 작은 연주회가 끝이 납니다.
마살레스 선생님 외에 다른 초대손님들은 이날의 '특별한' 연주회를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대신 음악 이야기로 파티의 후기를 나눌 뿐입니다.
무엇인가를 말하긴 해야 하므로 그들은 음악 이야기만 입에 올린다. 정말 감미롭다고, 참으로 아름다운 곡이라고, 제목이 뭐냐고. "행복한 그림자의 춤" 이라고 마살레스 선생님이 대답한다. _「행복한 그림자의 춤」 가운데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장애가 있는 소녀가 연주한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그들의 마음에 가 닿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앨리스 먼로는 이 음악을 '선생님이 사는 저쪽 나라에서 보낸 코뮈니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물음표 하나를 던질 수 있는, 마살레스 선생님은 그런 사람입니다.
2024.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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