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스웨덴 장화ㅣ헤닝 만켈 Henning Mankell

728x90
반응형


[책] 스웨덴 장화 Svenska Gummistovlarㅣ헤닝 만켈 Henning Mankell


스웨덴의 작가 헤닝 만켈(Henning Mankell, 1948-2015)의 마지막 소설, 2015년 출간된 <스웨덴 장화 Svenska Gummistovlar>입니다.

 

범죄 스릴러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때론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헤닝 만켈의 소설 속 문장처럼 조금 더 깊은 철학적 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728x90

 

주인공은 의료사고를 낸 후 발트해의 한 섬에 내려와 혼자 살고 있는 70세의 스웨덴 외과의사 프레드리크 벨린입니다. 어느 누구와도 깊은 주제로 대화하지 않고 '이방인'처럼 사는 그는 그와 같은 모습을 한 이웃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어느 날 밤 집에 화재가 나고 벨린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기장도 잊고, 짝이 맞지 않는 장화만 겨우 신은 채 간신히 몸만 대피합니다. 

 

 

은퇴하기 전까지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편물을 전해주는 일을 하던 투레 얀손이 지금도 대가 없이 여러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화재 이후 벨린을 챙깁니다. 

 

얀손은 무언가 더 묻고 싶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제대로 된 고무장화 한 켤레조차 없는 처지였다. 

 

 

의료 사고로 도망치듯 내려온 고향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집까지 화재로 잃은 상황이 더 없이 고통스럽습니다. 설상가상 경찰은 벨린을 방화 용의자로 의심합니다. 재앙이 잇따르는 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지 벨린 스스로도 자신이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다. 마음에 부담이 되는 일이 있을 때면 나는 종종 잠을 피난처로 삼곤 했다.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이. 나는 살아오면서 많은 은신처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중 어느 곳도 잠처럼 완벽하지는 않았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잠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소설은 자연스럽게 노화, 고독, 죽음으로 화두가 이어집니다.

 

외과의사로 일한 프레드리크 벨린에게는 인생의 무상함,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관한 수많은 잔상이 있습니다. 죽음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은 아이들이라며 그들은 절대 갖지 못할 인생 대신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인 죽음을 거의 항상 고요하게 맞이했다고 회상합니다.

 

ㅡ이 부분이 소설에서 꽤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는 것을 책의 끝 부분에서 알게 됩니다. 

 

반응형

 

파리에 사는 딸 루이제와 남자친구 아메드, 벨린이 사랑하게 된 여기자 리사 모딘, 은퇴한 우편배달부 얀손, 이웃 사람들이 소설 전반에 걸쳐 등장하고 모두가 각자의 수수께끼 같은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후에도 주택 화재는 섬 곳곳에 몇 차례 더 일어나고 경찰은 조그마한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집니다.  

 

안숀이 얼굴을 찡그렸다.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꼭 전염병 같아요." "우연일 뿐일세. 죽음은 우리 목덜미 뒤에 늘 도사리고 있네. 언제 그놈에게 물리게 될지 아무도 모를 뿐이야."

 

 

방화범은 소설 초반부터 여러 복선으로 예상은 하지만 마침내 밝혀진 부분에서 통쾌함 보다는 서글픔이 느껴집니다. 책 소개문에 적혀있는 '슬픈 영혼들의 자화상'이라는 표현이 이 소설의 결말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서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역시 내게서 그들 자신을 보아왔다는 사실을 그해 봄과 여름 동안 깨달았다. 

 

 

624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3시간만에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읽었습니다.

 

긴박감 같은 것보다는 이 소설이 대체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끌어내려고 이러는 것인가.. 하는 마음을 끝까지 놓을 수 없었다는 게 이유입니다.

 

소설은 프레드리크 벨린의 전소된 집이 새로 세워지고 화재 이후 주문한 짝이 맞지 않는 스웨덴 장화가 도착했다는 소식으로 끝이 납니다. 

 

그녀가 내 장화가 드디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폐허였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 집으로 올라갔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나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선과 악의 경계는 무엇인가?

 

헤닝 만켈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소설 <스웨덴 장화>에는 생의 본질적인 질문이 가득합니다. 그러니까 만켈은 우리가 누군가의 짝 잃은 스웨덴 장화의 한 쪽이 되어주길 바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1.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