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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고양이를 버리다ㅣ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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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ㅣ무라카미 하루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1949)의 자전적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입니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부제가 이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에 관한 에세이임을 말해줍니다. 작가 후기에서 저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언젠가 문장으로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만 가진 채 어디서부터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몰라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가족에 대해 말하는 것이 훨씬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늘'이 글쓰기의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집에는 고양이가 늘 많았습니다. 키우는 고양이, 오며 가며 들르는 고양이. 그래서 고양이에 관한 추억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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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하나의 사건을 꺼내듭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키우던 새끼 밴 고양이를 해변에 '버리고' 온 일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고로엔 해변에 고양이를 내려놓고 안녕이라 말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전거에서 내려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하는 기분으로 현관문을 열었는데, 조금 전 버리고 온 고양이가 "야옹"하면서 꼬리를 세우고 살갑게 우리를 맞았다. 

 

아버지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내 감탄과 안도가 섞인 얼굴을 하고는 그 고양이를 다시 키우기로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장차 양자가 된다는 의미로 어느 절에 동자승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일에 대해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버려짐'에 대한 기억이 아버지에게 새겨진 때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를 통해 이 '버려짐'에 대한 사유를 시도합니다.

 

트뤼포 역시 유소년 시절 부모와 떨어져 다른집에 맡겨진 경험이 있다. 그는 평생 작품을 통해 '버려진다'는 한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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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후반부쯤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토록 개인적인 문장을 쓰게 된 것에 대해 잠시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타고난 '글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그는 문장을 쓰면 쓸수록, 되읽으면 되읽을수록 자신이 투명해지는 감각을 느낀다고 합니다. 

 

나는 손을 움직여 문장을 쓰는 것을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환치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후기 '역사의 작은 한 조각'에서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쓴 자신의 개인사 역시 우리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라고, 독자인 우리들의 이야기 역시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여기에 있다. 아버지의 운명이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경로를 밟았다면, 나라는 인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라는 건 그런 것이다ㅡ무수한 가설 중 생겨난 단 하나의 냉엄한 현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했던 이유가 이 가운데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여기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정말 잘 씁니다. 추상적, 관념적 사색이 편한 저로서는 꽤나 부러운 능력입니다.


2024.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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