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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애프터 다크: 어둠의 저편ㅣ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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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애프터 다크: 어둠의 저편ㅣ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1949)의 2004년 작품 <애프터 다크; 어둠의 저편 After Dark>입니다. 소설은 밤 11시 57분부터 다음날 새벽 6시 52분까지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밤 사이 벌어진 약 7시간 동안의 이야기로 주인공은 동생 '마리'와 언니 '에리' 두 자매입니다. 

 

 

<애프터 다크>는 도입부부터 영화나 연극을 보는듯한 특이한 시점을 연출합니다. 화자는 '우리'라고 하는 1인칭 복수관찰자로 모호한 관념적 시점입니다. 이 소설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언니 에리의 정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들일수도 있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설정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시점이 되어 그녀를 보고 있다. 어쩌면 훔쳐보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_PM11:57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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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보내는 인물은 동생 '마리'입니다. 언니 '에리'는 무슨 이유인지 두 달째 잠들어 있습니다. 잠이 불규칙했던 에리는 가족들에게 잠을 선언하고 침대에 누운 이후 계속 잠만 잡니다. 

 

"그 이래로 계속 잠만 자요."

"계속?"

"네." 마리는 말한다.

 

동생과 언니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다릅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싫고 좋음이 분명한 동생 '마리'와 달리 예쁜 외모에 순응적인 언니 '에리'는 주위를 만족시키며 사랑받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에리의 친구 다카하시는 마리에게 그런 언니가 동생에게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을 수도 있다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콤플렉스? 에리가 나한테?"

"동생인 넌 노라고 말해야 할 때는 확실하게 말하고 뭘 할 때는 자기 페이스로 착착 진행했어. 그런데 에리는 그게 안 됐어. 훌륭한 백설공주가 되려고 노력해 온 거야. 확실히 다른 사람들한테 떠받들여졌겠지만, 그거 가끔은 힘들었을걸. 요컨대 네가 부럽지 않았을까."   

 

 

마리는 7시간이라는 밤 시간 동안 에리의 친구 다카하시, 호텔 '알파빌'의 매니저 카오루 등을 통해 에리에 대해 조금씩 생각을 열게 되고 다름의 '화해'에 조금씩 다가갑니다.

 

"뭔가를 정말로 알고 싶다면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어느정도에서 만족하고 그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도 있고, 위험을 무릅쓰고 더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선택입니다. 산을 오르지 않은 사람도, 산 중턱에서 멈춘 사람도, 산 꼭대기에 오른 사람도 나름의 '대가'를 치르며 살아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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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있는 것이든, 중요한 것이든,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든, 모든 기억을 연료로 살아가는 인간, 그 '기억'을 언급하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모든 인생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큰 갈등은 없지만 사랑도 없는 가족, 마리와 에리는 '기억'을 매개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게 아닐까? 그냥 연료.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 

 

 

<애프터 다크; 어둠의 저편>이라는 책의 제목은 이 책을 쉽게 읽어버릴 수 없게 하는 단서같이 보입니다. 표면에서 드러나는 '마리'와 '에리' 이야기 이면에 뭔가 더 있을 듯합니다. 명확하게 말하거나 쓸 수 없지만 알 것 같은, 혹은 이게 다가 아닐 것 같은 느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한 장의 백지다.


2024.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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