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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환상의 빛ㅣ미야모토 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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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환상의 빛ㅣ미야모토 테루, 상실과 이별


일본의 작가 미야모토 테루(Miyamoto Teru, 1947)의 단편집 <환상의 빛>입니다. 미야모토 테루는 비 오는 날 들른 서점에서 읽은 단편소설에 반해 자신도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그의 생에 전환점을 만들어준 '인생 소설'이 된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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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에는 표제작인 「환상의 빛」을 포함해 「밤 벚꽃」, 「박쥐」, 「침대차」 등 총 네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돼있습니다. 모두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과 이별을 겪은 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이 가운데 「환상의 빛」은 1995년 드라마로도 각색된 작품으로 줄거리만큼이나 잔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소설에서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 한신 전차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 저에게는 이것저것 다 알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_「환상의 빛」 가운데

 

첫번째 수록된 표제작 「환상의 빛」은 화자이자 주인공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소설입니다. '발을 동동 구를만한 분함과 슬픔'이 뒤섞인 7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새로운 인연도 만났지만 주인공에게 죽은 남편은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비 그친 선로 위를 구부정한 등으로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뿌리쳐도 마음 한구석에 떠오릅니다. 저는 당신이 죽은 그날부터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해온 마음속의 혼잣말을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_「환상의 빛」 가운데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제대로 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족, 친구 사이에도 우린 그들의 일부만을 경험할 뿐이며 그 조차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유서도 없이, 조금의 낌새도 없이 젖먹이 아이와 아내를 두고 떠난 남편, 혼자 남은 아내는 살아가기 위해 남편을 이해해 보려 다양한 시나리오를 써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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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대로 떠나버린 남편을 어떻게든 이해해야 자신이 살 수 있으니 치열하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려 혼잣말 같은 편지를 계속해서 쓰고 또 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집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중요한 혼을 빼앗아가는 병을, 사람은 자신 안에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의 마음에는 이 소소기 바다의 잔물결이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_「환상의 빛」 가운데

 

 

주인공 아내는 소소기 바다의 빛나는 잔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환상의 빛'을 봅니다. 혹여 기차선로 위를 잠잠히 걸어갔던 남편도 그 '환상의 빛'을 쫓아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주인공 아내는 내일은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겁니다. 영원히 알아낼 수 없을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려 혼잣말로 편지를 쓰고 또 쓰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나갈 측은한 아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_「환상의 빛」 가운데


2024.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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