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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무의미의 축제ㅣ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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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의미의 축제ㅣ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인간 삶의 본질을 더 없이 절묘하게 묘사한 제목의 소설, 체코 문학의 거장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의 장편 <무의미의 축제>입니다. 2014년 출간된 80대 작가의 원숙한 시선이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7월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9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밀란 쿤데라는 체코 태생이지만 체코가 소련군에 점령당한 후 시민권을 잃고 프랑스로 망명해 그곳에서 일생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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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에서는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네 명의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엮여 진행됩니다. 그 속에서 인간과 인생에 관한 끊임없는 사유가 이어집니다.

 

'농담의 끝에 대한 라몽의 애가'에는 1967년 출간된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이 오마주 된 장면이 나옵니다.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 장난이 힘을 잃은 시대의 무거움에 무의미로 대응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탁월함과 보잘것없음에 대한 라몽의 가르침'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뛰어난 것은 아무 쓸데없음을,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다고 라몽은 말합니다. 여성을 유혹하는 '몇몇' 장면에서는 말이죠.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그런데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 줘. 여자가 마음을 탁 놓게 만들고, 그러니 접근이 더 쉬워지지.

 

소설의 제목과 같은 마지막 7부 '무의미의 축제'에는 알랭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스스로 원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대화는 인간의 권리까지 나아갑니다. 알랭의 어머니의 말입니다. 

 

모두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떠들어 대지. 얼마나 우습니! // 못생겼다는 것, 그것도 역시 인간의 권리에 속하나? 한평생 짐처럼 추함을 짊어지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아니? 네 성도 마찬가지,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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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의 어머니는 지금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 중 절반이 못생겼음을, 그 못생김을 안고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지에 대해 목청 높여 대변합니다. 이 부분이 마치 '농담'처럼 여겨집니다. 언젠가 친구의 카톡 프로필에 쓰인 문구가 생각납니다.

 

"요즘 어때? 못생긴건 좀 괜찮아?"  

 

 

하찮고 의미 없음. 우리 인간 존재의 삶이 하찮고 의미 없음의 축제일뿐이라는 것을 밀란 쿤데라는 이 책 <무의미의 축제>의 주제로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찮고 의미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그걸 인정하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해야 해요.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

 

무의미의 축제를 끝내고 떠난 밀란 쿤데라는 인간 존재의 무의미의 비밀을 이젠 알아냈을까요. 


2023.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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