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책]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ㅣ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728x90
반응형


[책]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ㅣ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입니다. 이 책은 독일 문학의 거장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가 여름 한 달 만에 써 내려간 소설로 당시 그가 겪고 있던 엄청난 정신적 위기를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생애 마지막 걸작을 완성해 내는 화가 클링조어의 모습에서 중년 이후 그림을 통해 정신질환을 극복해 낸 헤세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라도 밤낮으로 계속해서 불꽃 속에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일 낮 여러 시간동안 열정적으로 작업하고, 매일 밤 여러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생각했다.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힘은 많이 소진되었고, 시력도 많이 약해졌다. 삶은 많은 피를 흘렸다. 

 

예민한 감성을 지닌 주인공 클링조어는 어느 해 여름, 자기 앞에 놓인 죽음을 알아차립니다. 실제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죽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죽음의 냄새ㅡ국도변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 냄새ㅡ를 맡습니다.

 

728x90

 

클링조어는 이제 화가로서 남은 열정을 다바쳐 마지막 작품을 완성합니다. 생의 끝에서 클링조어는 열정적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남은 열정이 그리 많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 누구라도 오랫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모든 불을, 자신의 모든 화산을 불태울 수는 없으며, 그 누구라도 밤낮으로 계속해서 불꽃 속에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힘은 많이 소진되었고, 시력도 많이 약해졌다. 삶은 많은 피를 흘렸다. 

 

 

클링조어는 자신의 그림들, 그리고 자신의 창작활동을 되돌아봅니다. 집과 사람, 나무는 더 이상 그리지 않겠다고, 변화하고 있는 모든 것, 충만한 탄생, 소멸, 신과 죽음을 그리겠다고 독백합니다. 이런 클링조어에게서 헤세가 보입니다. 헤세의 그림 대부분은 그것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집, 사람, 나무, 산, 꽃 같은 자연물을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냅니다. 헤세는 자신이 왜 그림을 그리는 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클링조어의 입을 통해 쏟아냅니다.

 

무엇 때문에 이 모든 그림들은 색채로 가득 차 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 모든 수고, 이 모든 땀방울, 이 모든, 느닷없는, 도취한 창작 욕구가 존재하는가? 구원이 있었는가? 휴식이 있었는가? 평온이 있었는가? 

 

 

누구나 자신의 별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것이라고는 단 한가지, 몰락뿐입니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의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유럽 사회에 구시대의 소멸과 새로운 탄생이라는 전환기를 상징합니다.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헤세의 드로잉 역시 어떤 면에서는 구시대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클링조어는 세상을 향해, 우리 모두를 향해 변혁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몰락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커다란 전환점이 우리에게 닥쳐왔습니다. 우리의 돈은 종잇조각일 뿐이며, 기계는 쏘고 폭발시키기만 할 수 있을 뿐이며, 우리의 예술은 자살입니다.

 

삶에 대한 욕구와 죽음의 공포 사이를 오가며 클링조어는 미친 듯 붓을 휘두르며 그림에 몰두합니다. 1919년 여름 당시 헤세가 처한 상황, 재정난과 아버지의 사망, 아내의 우울증과 아들의 발작으로 인한 고통이 클링조어의 모습으로 구현됩니다.

 

반응형

 

이처럼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예고하는 그의 몰락은 클링조어의 마지막 작품인 자화상으로 드러납니다. 클링조어는 자화상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에케 호모, 이것이 인간이라고. 말세의 지치고 탐욕스럽고 거칠고 천진하면서도 세련된 우리 인간, 죽어 가는, 죽고자 하는 유럽인이라고. // 운명과 고통에 중독된, 고독한, 내면적으로 약화된, 태곳적의, 동물이자 현자, 적나라하게 노출된, 명예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완전히 벌거벗은, 권태에 지쳐 죽음에 대한 준비를 끝낸 유럽인이라고. 

 

클링조어의 죽음은 당시 서구 사회의 몰락을 대표하고 있으며, 그의 자화상은 유럽 사회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헤세 자신의 몰락과 생을 위한 변혁의 절실함을 암시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메시지 속에는 늘 개인의 고통이 담깁니다. 


2023.12.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