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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철학자의 여행법ㅣ미셸 옹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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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철학자의 여행법 Théorie du voyageㅣ미셸 옹프레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 1959)의 에세이 <철학자의 여행법 Théorie du voyage>입니다. 미셸 옹프레는 왕성한 집필력으로 철학사, 여행, 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하는 '사유의 모험가'로 불립니다. 이 책 역시 저자의 지적 영토가 얼마나 방대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철학자의 여행법>은 달리 말하면 '유목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농업인들과 달리 한 곳에 정착하지 않으며 재산을 축적하고 땅을 늘리는 일에도 관심이 없는 자유인, 그들의 여행에 관한 미셸 옹프레의 철학적 해석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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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카인의 후예라고 표현한 점에 꽤나 설득력이 있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Cain)과 아벨(Abel) 형제 이야기에서 농부인 형 카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양치기 동생 아벨을 시기해 죽입니다. 이 죄로 카인은 영원히 떠돌아다니라는 벌을 받게 되는데 미셸 옹프레는 여기서 영원한 여행의 근원이 속죄라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여행자들은 바로 보들레르(Baudelaire)가 소중히 여기던 카인의 후예들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착하지 않는 집시나 여행자들을 왕이나 군주, 권력자들이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집단에 어울리지 못하는 방랑자들은 그들이 구현하기 원하는 공동체에서 늘 빠져나가려고 애쓰기 때문인데 이러한 도식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철학자의 여행법>에서는 여행이 도서관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몸속에 여러 이유들로 자리 잡은 여행에 대한 욕망이 책, 지도, 소설, 시가 쌓인 책장에서 점점 커지게 됩니다. 목적지를 정할 때나 여행을 다니며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게 되는 것에 대한 해석도 꽤 합리적입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물, 불, 흙, 공기에 대한 열정이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우리 자신이 특별히 선호하는 장소를 선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장소들에 의해 선택 '되는' 것이다.  

 

 

비행기가 주는 철학적 교훈에 대한 설명은 비행기 덕후인 제가 특히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땅에서 크고 위대하고 중요하게 보이던 모든 것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사소하고 초라하고 무의미해 보인다.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갑자기 위대한 전체의 일부임을 자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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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옹프레는 <철학자의 여행법>을 통해 자신과 같은 '유목민'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이미 유목민임을 자각한 이들이 이 책을 만난다면, 혹은 이 책을 통해 유목민임을 자각한다면, <철학자의 여행법>은 더없이 좋은 동행입니다. 

 

우리는 다시 떠나게 될 것이다. 여행에 대한 열정은 환경의 변화나 육체의 확대, 존재론적 고독, 형이상학적 이타심, 구체화된 미학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독성을 경험한 육체를 떠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주장에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지만 사족입니다. 이 책을 여기까지 읽어낸 사람이라면 100퍼센트 이 말에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죠. 적어도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철학자의 여행법>에는 좋은 문장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세상은 그것을 말로 표현하려는 온갖 시도에 저항한다." 

 

라는 문장이 특히 근사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자신을 해석해낼 유목민들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있습니다. 


2023.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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