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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카사노바 호텔ㅣ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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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카사노바 호텔 Hotel Casanovaㅣ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1940)의 문학 선집입니다. 표제작 「카사노바 호텔 Hotel Casanova」을 포함한 장르와 성격이 각기 다른 12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습니다. 저자 아니 에르노는 프랑스 갈리마르 총서 시리즈에 작품을 올린 인물로 생존 작가가 여기 편입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프랑스 문학계에서 그의 위상을 알 수 있습니다. <카사노바 호텔>은 출판사의 평에 따르면 아니 에르노의 '정수'를 추렸다고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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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카사노바 호텔 Hotel Casanova」은 자전적 회고록으로 저자가 평생에 걸쳐 천착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 <단순한 열정>, <집착>, <탐닉>과 궤를 같이 하는 작품입니다.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퇴행했고 갑작스럽게 노인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을 견뎌나갈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묻던 때였다. 

 

중증질환에 걸려 쇠약해져가는 어머니의 육체, 그것을 견디기 위한 생명력에 대한 집착이 업무상 만난 P와의 섹스로 표출됩니다. 

 

나는 어머니의 상태에 맞서 저항하기를 그만뒀다. 더는 그 육체에 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육체적 사랑의 가없음과 불가해함을, 그 연민의 층위를 느꼈다. 결코 서로 만날 일 없을 남자와 여자를 결합시키는 비가시적 물질처럼 그와 카사노바 호텔에는 뭔가가 있었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과 P와 섹스하던 카사노바 호텔이 어렴풋이 겹쳐집니다. 쪼그라들어가는 어머니의 육체를 지우기 위한 노력은 육체적 사랑에 대한 연민으로 수렴합니다. 표제작  「카사노바 호텔 Hotel Casanova」은 무척 짧은 작품인데 두꺼운 책 한 권을 읽은 듯 묵직한 여운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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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 호텔>에 네 번째로 수록된 작품 「방문」 역시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에 관한 회고록입니다. 45세, 지금 자신의 나이에 누구보다 근사하고 멋진 삶을 살던 어머니는 이제 노인 요양원에 있습니다. 

 

여자들이 한꺼번에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딸의 어머니가 몸을 일으켜 의자와 테이블 사이에 선다. 보러 온 대상이 자신이라는 자랑스러움. 이렇게 서로 구별되지 않는 여자들 가운데 자신도 끼여 있다는 부끄러움. 

 

 

그 어머니는 방문을 마치고 돌아나오려는 딸을 붙잡습니다. 이제는 딸 외에 바깥세상과의 연결이 모두 끊어져 버린 늙은 여인을 보는 일이 힘겹습니다. 어머니를 떼놓고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는 딸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생의 끝자락에 늙어버린 자신을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엘리베이터까지 딸을 쫓아나와 갑자기 말을 쏟아낸다. 딸이 승강기 단추를 누르자, 승강기 문 두 짝이 닫히면서 흔들거리며 한창 입술을 움직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부숴놓는다. 딸이 다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멋지게 살던 자신의 어머니, 지금 딸은 그때의 어머니와 같은 나이 마흔 다섯입니다.


2023.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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