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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명화 속 고양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ㅣ이데 요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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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명화 속 고양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ㅣ이데 요이치로


그림 속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잡은 고양이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여기에 고양이가 있을까?"

 

많은 예술가들에게 고양이는 영감을 주는 존재이며 친구이자 스승입니다. 피카소, 마티스, 하루키, 헤밍웨이 등 여러 작가가 애묘인으로 알려진 것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책 <명화 속 고양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에서는 저자인 이데 요이치로(1949)와 가와모토 모모코(1984)가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명화 속에 그려진 고양이들을 통해 감춰진 다양한 메시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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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1449-1494)의 <최후의 만찬, 1486>입니다. 그리스도와 제자들 앞에 앉은 피고인 유다, 그 뒤에 오도카니 앉은 고양이는 오묘한 표정으로 화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데 요이치로는 고립된 유다의 심경을 한 마리 고양이로 나타냈다며 요한이나 베드로에게 밀려 스승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없었던 유다의 질투가 배반으로 이어졌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니콜라스 마스(Nicolaes Maes, 1634-1694)의 <기도하는 노파, 1656>에는 아주 익숙한 고양이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우측하단에 식탁보를 잡아당기는 장난꾸러기 고양이는 진지하게 기도하는 여인과 확연히 대비됩니다. 저러다 식탁에 걸쳐진 과도가 떨어지면?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면? 여인의 기도가 중단되는 것은 물론 한바탕 잡돌이가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의 <고양이를 안은 여인, 1868>에서는 어딘가 몹시 불편해 보이는 고양이가 나옵니다. 볼 빨간 여인은 고양이를 처음 안아보는 듯 자세가 어색합니다. 반면 아래 베르트 모리조의 <고양이를 안은 줄리 마네, 1887>에서는 안정적인 자세로 고양이를 안은 처연한 표정의 아이와 편안한 표정의 고양이가 애묘인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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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존 윌리엄 고드워드(John William Godward, 1861-1922)의 <무위>입니다. 한가로운 오후에 고양이에게 깃털을 흔들어주는 여인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충만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반면 고양이는 이제 막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중이네요.  

 

 

"왜 여기에 고양이가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는 문구입니다. 너 왜 여기 있어? 너 왜 그러고 있어? 이해할 수 없는 고양이의 매력은 그림이나 문학작품에도 그대로 구현됩니다. 

 

저자 이데 요이치로는 화면 구석에 있는 고양이의 존재에 주목하는 일은 미술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고양이의 매력을 아는 이들에게 고양이에 집중해서 명화를 해석하는 일은 더 없이 흥미롭고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고양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명화와 해설, 소장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2023.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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