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망작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이유ㅣ리카르도 보치
세계문학전집이 위풍당당하게 꽂혀 있는 서가 끝 지점에 문학사의 걸작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얇은 책 한 권이 보입니다. 제목은 <망작들 Dear Author: 당신의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이유>, 뭔가 유쾌하고 흥미로운 내용일 듯한 아우라가 느껴져 책장을 펼쳐봅니다.
마침 제가 펼친 부분이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였는데 읽다가 도서관 서가 앞에서 빵 터졌습니다.
"조이스 씨께, 작가님께 도움이 될 만한 언어치료사를 소개해드릴 수 있는데, 어떠세요?"
이 책 너무 웃깁니다.
저자인 리카르도 보치(Riccardo Bozzi)는 이탈리아의 한 신문사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책 <망작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이유>은 세계문학사를 빛낸 명작들에 대한 재치 넘치는 오마주로 능청스럽기 짝이 없는 편집자가 세계적인 작품들을 줄줄이 퇴짜 놓는 편지들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벨상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대해서는 이런 맹랑한 문구로 퇴짜를 놓습니다.
"친애하는 가보, 마술적인 내용, 초자연적인 내용, 신비주의를 넘나드는 내용을 덜어낸다면 훌륭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내용을 다 덜어낸다면 남아 있는 것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 기독교 경전인 「성경」도 이 엉뚱하고 대찬 21세기의 편집자를 피해가지 못합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계시는 분이, 우리 출판사에 왜 굳이 원고를 보내셨나요?" _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하느님 당신이 직접 쓰셨잖아요? 독자들은 무엇을 바라겠어요? 디테일, 디테일, 디테일!" _하느님 「성경」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는 구글 검색엔진에서 최상위 노출이 어렵다며 제목을 '잠자(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이름)'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21세기 편집자 다운 조언을 자못 진지하게 해댑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출판 시장이 작다는 이유로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잡고 모험도 하고 개척도 하라는 확신에 찬 오판을 서슴지 않습니다.
"우선 제목이 문제입니다. '변신'은 구글에서 검색하기에는 좋은 제목이 아니에요. 경쟁작이 너무 많아요." _프란츠 카프카「변신」
"그렇다고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지는 마세요. 시장이 너무 작으니까요." _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이 유쾌하고 엉뚱한 편집자 리카르도 보치(Riccardo Bozzi)는 책 <망작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이유>의 첫 장에 실패에 관한 격언 하나를 적어두고 있습니다. "한 번 더 도전, 한 번 더 실패, 더 나은 실패." 세계적인 문학작품들도 이런 허무맹랑한 퇴짜를 맞는데 우리 삶에서 만나는 실패에 너무 좌절하지 말라는 위로와도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와 마르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 두 명작에 재도전(!)할 의지가 생기게 한 책입니다.
2023.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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