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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작은 파티 드레스ㅣ크리스티앙 보뱅 Christian Bobin,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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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작은 파티 드레스ㅣ크리스티앙 보뱅 Christian Bobin, 산문집 (1984BOOKS)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보면 대여 권수를 초과해서 한 권을 빼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내려놓기를 반복한 책이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 1951-2022)의 산문집 <작은 파티 드레스 Une petite robe de fete>입니다. 내려놓은 이유는 왠지 이 책은 이번에 읽지 않아도 언젠가 읽게 될 것 같다는 엉뚱한 확신 때문인데 결국 이렇게 읽게 됐습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은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와 같이 고독을 자처한 작가 중 한명입니다. 프랑스 브르고뉴 지방 크뢰조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글쓰기를 하며 문단이나 출판계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습니다. 사유의 농도가 짙은 보뱅의 문장은 한번 읽으면 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파티 드레스 Une petite robe de fete>는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명상을 주요 맥락으로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 한 권에 아홉 편의 산문 형태로 실려있습니다. <작은 파티 드레스>라는 책 제목은 마지막에 수록된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내가 책을 읽는 건, 내 삶 속에서 괴로워하는 생명을 보기 위해섭니다. 그저 보려는 겁니다. 

_ep.6 '숨겨진 삶'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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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위안을 받거나, 무언가를 배우려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삶을 현실에서보다 더 잘 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말합니다. 삶을 어쩌면 실제보다 더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글이라는, 그래서 삶을 바라보듯 독자는 치열하게 읽고 또 읽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글쓰기란 무엇인가? 크리스티앙 보뱅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거의 유일한 것이 '가난한 삶'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무(無)'가 차고 넘치는, 배고픔과 결핍 속에서만 우리는 제대로 볼 수 있고 제대로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글쓰기란 '분열된 세상과 끝장을 보기 위한 것'이라 표현하며 타자(세상)를 지향하는 글,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을 건드리기 위한' 글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가난한 삶만 있으면 된다. 너무 가난해 아무도 원치 않는 삶. 우리는 오로지 부재 속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_ep.6 '숨겨진 삶' 가운데

 

 

이 책 <작은 파티 드레스>에서 크리스티앙 보뱅의 문체에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용어의 사용인데 이것은 마치 크리스티앙 보뱅 자신을 일컫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특정한 청자를 가정한 듯도 하며, 자신과 생각이 같은 우리를 향한 호칭같기도 합니다. 덕부에 누군가의 편지를 엿보는 듯한 긴장도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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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단편 '약속의 땅(Terre promise)'에는 중요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방부처리 된 미래', 이 표현은 제목 '약속의 땅'과 생각의 흐름이 이어집니다. 방부처리 된 미래를 향해 가는 이들을 앞서 언급한 '당신'은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역은 비즈니스맨들로 붐빈다. 무표정한 사람들. 같은 사람을 수십 명 찍어낸 것 같다. 젊지만 낡은 언어를 쓰는 그들의 미래는 방부처리 되어 있다. 당신은 좀 두려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_ep.5 '약속의 땅' 가운데

 

 

크리스티앙 보뱅은 서문에서 독서의 가치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는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벽은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며 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라는 극단의 비교를 들고 나옵니다. 답변이 불가능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하게 될 가능성이 짙어 보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삶이다.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온갖 잡다한 것들의 축적으로 질식할 듯한 삶이다.

_'서문' 가운데


2023.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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