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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얼음 속을 걷다 Vom Gehen im Eisㅣ베르너 헤어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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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얼음 속을 걷다 Vom Gehen im Eisㅣ베르너 헤어초크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 1942)의 일기 형식의 여행기 <얼음 속을 걷다 Vom Gehen im Eis>입니다. 일기는 1974년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 22일간 작성되었으며, 책은 1978년 출간되었습니다.

 

1974년 11월말, 파리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절친한 영화평론가 로테 아이스너(Lotte H. Eisner, 1896-1983)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베르너 헤어초크는 아이스너를 만나러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곧장 길을 나섭니다.

 

 

무모한 이 여정은 어쩌면 아이스너를 살려달라는 그의 간절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스너는 죽어서는 안 된다, 죽지 않을 것이다, 허락하지 않겠다, 그녀는 죽지 않는다, 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아니, 그녀는 죽지 않았지, 죽지 않을 테다, 나의 발걸음은 확고하다.

_<얼음 속을 걷다> 11월 23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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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초크가 서문에서 독자를 의식하고 일기를 쓴 것은 아니라고 밝힌대로 이 책 <얼음 속을 걷다>는 다듬어지지 않은 그의 적나라한 내면의 기록입니다. 매일 잠을 잘 숙소를 구하는 것도 녹록지 않았으며 어떤 날은 축사에서 자기도 하고 빈 오두막에 무단침입도 합니다. 

 

밤을 지내는 일의 어려움. 어둠 속에서 어느 집 문을 뜯으려 시도하다가 나침반을 잃어버렸다. 

_<얼음 속을 걷다> 12월 3일의 기록

 

 

12월 6일 기록에 감정이입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침 이른시각ㅡ종업원이 식사를 하는ㅡ 아직 영업 전인 식당에서 주인의 배려로 식사하는 장면입니다. 청소부 두 명, 종업원, 헤어초크까지 모두가 바깥 도로 방향으로 앉아 식사를 합니다. 감히 시선을 옮기지 못한 채 '어떤 강박감'으로 꼼짝 않고 똑바로 앞만 바라보며 식사하는 그들에게 두리번거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는 그녀가 앉아 있는 쪽 너머를 보고 싶었지만 우리 둘 다 감히 서로를 향해 시선을 두지 못했다. 그녀는 꼼짝 않고 똑바로 앞만 바라보았다. 어떤 강박감이 우리 두 사람을 억압했다. 

_<얼음 속을 걷다> 12월 6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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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남루해지는 행색 때문에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도 받습니다. 폭풍우, 눈보라, 거친 날씨에 걸어서 파리에 가는 자신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흘러나옵니다. 헤어초크는 자신에게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되짚어봅니다. 그리고는 의지를 다잡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엄청난 눈보라에 기가 막혀 절로 웃음이 났다. 카페에 들어설 때 내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경찰을 보자마자 체포당할까 겁이 나서 잽싸게 화장실로 뛰어가 거울 속의 내가 아직 인간의 몰골을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왔는데 이제 와서 차를 탄다? 이것이 무의미한 행위라면, 차라리 이 무의미함을 남김없이 실천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_<얼음 속을 걷다> 12월 11일의 기록

 

마침내 파리에서 아이스너를 만나고 헤어초크의 정성 덕분인지 아이스너는 고비를 넘기고 이후 8년여를 더 살았습니다. 누군가 매일 같은 시각 같은 행동을 정성 들여 행한다면ㅡ대부분 그것은 기도의 형태ㅡ 소원하는 어떠한 결과든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지금 어떤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2023.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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