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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ㅣ루이스 세풀베다, 창작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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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ㅣ루이스 세풀베다, 창작동화


칠레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ulveda, 1949-2020)의 창작 동화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Historia de un perro llamado leal>입니다. 이 책은 2015년 출간한 세풀베다의 네 번째 창작 동화로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마푸체족 사람들이 기르던 개 아프마우(Afmau) 이야기입니다. 이프마우는 마푸체족 말로 '충직, 충성'이라는 뜻으로 대를 이어 마푸체족에게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를 동화로 써낸 작품입니다. 

 

우선 칠레 태생인 저자 루이스 세풀베다는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Ugarte, 1915-2006) 독재정권이 칠레를 장악하자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그러했듯 나라를 떠나 수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게 됩니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다니다 1980년 독일로 이주, 1997년에는 스페인 히혼에 정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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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풀베다는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로 개 아프마우(Afmau)를 내세웁니다. 다른 감각보다 후각이 뛰어난 개의 특성상 아프마우는 시각(눈)이 아닌 후각(코, 냄새)을 통해 인간 세계를 자각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냄새'와 관련된 판단을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다닐 때 늘 무언가를 두려워한다. 나는 개라서 그 정도쯤은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두려움은 언제나 똑같은 냄새를 풍긴다.  

_「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ep.1 가운데

 

두려움의 냄새라니. 뒷 부분에서는 이런 문장도 나옵니다. "인간들에게서 절망의 냄새가 난다". 두려움의 냄새와 절망의 냄새, 이것들은 후각을 통해 지각하는 진짜 '냄새'일까요 아니면 동물적인 '직감'같은 것일까요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외신에서 질병이 가진 독특한 냄새를 감지하는 개가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감정에도 물리적인 냄새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푸체족 마을에서 살던 아프마우는 어느 날 마을을 침입해 온 낯선 외지인들에게 붙들려가면서 옛 주인들과 이별하게 됩니다. 이후 아프마우는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따뜻한 대지의 사람인 마푸체족과는 다른, 절망과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외지인들에 의해 사냥개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불행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새 주인들이 잡아 가두고 있던 인디언 한 명이 탈출하고 아프마우를 풀어 그를 추척하게 합니다. 예민한 후각을 지닌 아프마우는 그 인디언에게서 익숙한의 냄새를 맡게 되고 그가 마푸체족 친구 아우카만(Aukaman)임을 알아차립니다.

 

내가 다가오는 소리에 깜짝 놀란 아우카만은 무릎을 꿇으면서 경계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에게서는 두려움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나는 역겹기 짝이 없는 그 냄새를 잘 안다.

_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ep.9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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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뜨겁게 재회하고 마푸체족의 언어로 대화를 나눕니다. 사냥개로 길러지며 늘 허기진 상태로 살아온 아프마우를 보고 먹을 것을 나눠주는 아우카만, 총에 맞아 상처가 난 아우카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약을 구해오는 아프마우, 그들은 주인과 개의 관계가 아니라 형제입니다. 

 

아우카만은 내 배를 만져 보더니 내가 얼마나 굶주렸는지 알아차린다. 자루에서 곡물 가루를 한움큼 꺼내 빗물에 섞어 죽을 만든 다음 손바닥을 오목하게 오므려 내 입 앞에 갖다 댄다. 

_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ep.9 가운데

 

이 부분 묘사가 특히 와닿습니다. 제 고양이 다콩이에게 과일이나 야채를 줄 때 소화 잘 되라고 늘 저렇게 해서 주는데 '손바닥을 오목하게 오므려 내 입 앞에 갖다 댄다'는 아프마우 시선에서의 표현이 더없이 다정해보입니다. 

 

 

아프마우가 구해다 준 약으로 상처를 처치한 아우카만은 이내 아프마우가 죽어감을 느끼게 되고 다정한 마푸체족 언어로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마리치웨우 페니(형제여, 우리는 앞으로 열 번은 더 이겨 낼 거야)." 이는 누군가와 헤어져야 할 때 대지의 사람들이 작별 인사 대신 하는 말이다. 

_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ep.9 가운데

 

아프마우가 말하는 '지독한 두려움의 냄새'는 어쩌면 자연이나 생명보다는 권력이나 자본의 노예가 되어 불안하게 살아가는 인간이 풍기는 적대와 소외의 악취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는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상실한 채 파편화한 현대사회를 향한 조용한 경고 메시지입니다.  


2023.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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