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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멍청이의 포트폴리오ㅣ커트 보니것, 미발표 초기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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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멍청이의 포트폴리오ㅣ커트 보니것, 미발표 초기 단편집


미국 최고의 풍자가,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1922-2007)의 <멍청이의 포트폴리오 Sucker's Portfolio)입니다. 이 책은 커트 보니것 사후에 미발표 초기 단편과 미완성 단편을 엮은 모음집으로 2012년 출간되었습니다. 

 

저자 커트 보니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 폭격의 생존자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경험은 그를 미국 문학사의 반전 작가로 거듭나게 합니다. 절망적인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독특한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그의 작품에 녹여냅니다. <멍청이의 포트폴리오>에 실란 단편들은 초기 작품이라 후기작들에 비해 블랙 유머는 덜하지만 군더더기 없고 신선한 이야기 전개는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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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수록된 단편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는 영어사전에서 소심한(timid)과 멀리 떨어진 곳(timbuktu) 사이에 위치한 단어 '시간(time)'을 주제로 쓰였습니다. 제목을 이렇게도 뽑을 수 있다니!

 

데이비드는 시간을 이해하고, 시간에 저항하고, 시간을 물리치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뒤로 돌아가기 위해. 아내 저넷과 함께했던 순간으로.

_<멍청이의 포트폴리오> Episode1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 

 

주인공 데이비드는 2주 전 사고로 아내를 잃은 화가입니다. 이별의 슬픔으로 힘겨워하던 데이비드는 어느 날 일시적으로 죽음을 경험하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과거를 여행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내와 함께 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데이비드는 임사체험을 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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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는 자신을 일시적인 죽음으로 인도할 장치들을 구상해 세심히 체크하고 자신을 다시 살려줄 의사에게 왕진 요청까지 해둡니다. 계획은 완벽한 듯 보입니다. 의사가 방문할 시점에 맞춰 계획을 실행하는 순간 자신이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오고 이전에 보지 못한 작품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시간(time)' 덕분에.

 

자기가 뭘 그렸는지 이제야 깨닫다니 얼마나 이상한가. 멀리서 보니 물감 덩어리들은 멋진 풍경화가 되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자신의 명작을 향한 부질없는 경의의 표시였다.

_<멍청이의 포트폴리오> Episode1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 

 

그리고 그것을 깨닫기 직전 왕진 오기로 한, 그를 다시 살려줄 의사에게 전화가 걸려옵니다. 응급상황이 생겨 두어 '시간(time)' 늦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책의 도입부에서 데이비드에게 임사체험의 경험을 들려준 늙은 농부가 일시적으로 죽음으로 건너가던 순간, 절망 속에 데이비드가 했던 말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동안 다시 오버랩됩니다. 

 

또다시 시간이 이겼다. 또 한 명의 인간을,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훔쳐가버렸다. 


2023.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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