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ㅣ마르탱 파주, 꿈이 없으면 안 되나?

728x90
반응형


[책]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ㅣ마르탱 파주, 꿈이 없으면 안 되나? (내인생의책)


도서관 서가에서 선뜻 호감 가는 제목의 책이 있어 골랐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Plus tard je serai moi>,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Martin Page, 1975)의 소설입니다. 표지의 일러스트도 절묘합니다. 마르탱 파주는 대학에서 심리학, 언어학, 철학, 사회학, 예술사,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했습니다. 이후 접시 닦기, 야간 경비원, 기숙사 사감, 페스티벌 안전 요원 등으로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았으며 지금은 소설 쓰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이 소설을 놓고 이토록 인간적인 한 문장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원서 제목은 <Plus tard je serai moi>, '언젠가 나 자신이 될 거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한국어판 제목이 소설의 내용과 더 잘 어울립니다. 

 

728x90

 

주인공은 중학교를 다니는 소녀 셀레나입니다. 사춘기를 살아가는 일은 꽤나 힘겹고 분주하고 고됩니다. 사소한 것들에도 신경을 쓰는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밖으로 잘 표현하고 싶을 뿐입니다. 

 

셀레나는 자신을 날마다 가꿔야 하는 정원이라고 여겼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항상 가다듬어야 했다. 

 

 

수업 시간에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고, 쉬는 시간에는 인간관계에 관해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 같습니다. 셀레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어 또래의 놀이 문화에 발을 들이는 것을 꺼립니다. 오직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베란이라는 친구와만 우정을 나눕니다. 

 

무리가 생기고, 우정과 적대감이 드러났다. 질투, 거만, 악의가 판을 쳤다. 셀레나와 베란은 놀이에 '끼어들지 않음'으로써 이 사회적 놀이에 참여했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한 것이다. (...) 두 소녀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불편한 태도, 고독함, 몽상을 즐김, 이상함 같은 장점을 하나쯤은 갖추어야 했다. 

_「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본문 가운데

 

 

친구 베란과의 수다가 즐겁고 맛있는 간식에 행복해하는 10대인 셀레나에게 부모님은 '미래'에 대한 강요를 시작합니다. 셀레나에게 예술가가 될 것을 권하고 거기 맞게 미술에 필요한 화구, 음악활동에 필요한 피아노 등 다양한 재료들을 동원하며 셀레나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셀레나, 넌 아주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어. 넌 예민하고 영리한 데다 재능이 있으니까." 

_「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본문 가운데

 

여기 더해 친구 베란까지 셀레나에게 예술가 소질이 있다는 둥, 부모님이 잘 보셨다는 둥, 속 터지는 반응을 보입니다. 글도 못 쓰고 그림도 못 그리고 예술가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셀레나는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상담도 해보고 예술가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해봅니다. 시간이 필요한 셀레나에게 부모님들의 행동은 시련과도 같습니다.  

 

반응형

 

대개는 교사, 변호사, 의사 같은 안정적이고 수입도 괜찮은 직업을 권유하는데 셀레나의 부모는 조금 독특합니다. 오히려 흥정하듯 교사, 변호사, 의사가 되겠다는 셀레나에게 그 직업들의 단점을 열거하며 오로지 '예술가'가 되기만을 권유합니다. 

 

"변호사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해.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할 뿐이지. 맙소사, 학교 교육이 네 깊은 인성을 왜곡해서 고리타분하게 사리 분별이나 따지고 있도록 만든 거야?" "그럼 의사요."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일이구나. 사람들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 의사는 아무것도 아니지. 도덕심이라곤 없는 직업이야. 의사는 바이러스와 같은 편이란다."

_「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본문 가운데

 

이 부분은 마치 중학생인 아이들이 부모들을 향해 하고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장치로 사용됐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부모가 과연 21세기에 존재할지 의문입니다. 

 

 

마침내 셀레나는 부모님께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자신과 코드가 잘 맞는 '괴짜' 클라라 고모 집으로 향합니다. 고모는 엉뚱한 심리상담사로 가족들은 고모가 미쳤다고 수군거리지만 셀레나의 눈에는 그런 광기와 괴상한 생각들에도 다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자신에게 예술가가 될 것을 강요하는 부모님에게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직접 예술가가 되시면 어때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위대한 예술가 중에는 노년이 되어서야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다고요." 

_「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본문 가운데

 

이 책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에는 셀레나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다른 그 또래 아이들에게, 그리고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을 향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비슷한 기억을 갖고 성장한 어른들에게는 중학생 셀레나가 남긴 편지가 생에 관한 굳은 사고를 깨는 계기를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3.11. 씀. 


 

728x90
반응형